나를 안은 채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뭔가를 논의한다. 흰 가운은…… 싫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다. 무슨 무슨 수치가 좋지 않고, 오줌을 만들지 못해 입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흰 가운과, 여기 더 두었다간 스트레스로 애가 죽을 것 같다는 할배의 의견이 팽팽하다.
할배 말이 지극히, 당연히, 결단코 맞다. 이곳이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자연치유라는 게 있지 않은가. 마음만 편해진다면 무슨무슨 수치와 오줌 문제는 바로 해결될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 뭐 그런 것도 있잖아. 환자의 마음이 약이 되는…
부디 할배가 이겼으면 좋겠다. 좋겠는데……………………………………………
이런 C, 또 병실이다.
남자 사람들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군대생활 중 제일 긴 하루는 전역하기 하루 전날이라는. 그렇게 길고 긴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나는 생각이 없는 할배 차를 타고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할매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은 변함없이 차분한 공기를 머금고 모든 게 제자리에 차분하게 있다. 내 밥그릇과 물그릇, 소변 패드, 내 집, 내 방석, 내가 좋아하는 소파와, 할배·할매의 침대 등, 변한 게 없다. 그런데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소파와 침대는 너무 높아 보이고, 내 집과 소변 패드는 한번 가기엔 너무 먼 거리가 되어있다. 공간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했구나, 내 몸이 변했구나 싶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한 날들이 지나간다. 뒷다리의 붕대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흰 가운이 걱정했던 대소변은 잘 볼 수 있다. 그것도 지나치게 많이. 플라시보 효과라는 그거 확실히 있다니까.
또 차에 오른다. 또 긴 시간을 달린다. 또 그 병원이다.
‘아! 왜? 또?’
들어가기 싫다. 슬쩍 할배의 표정을 살핀다. 쓸데없이 단호한 표정이다. 또 여기 있어야 하나? 불안 초조해진다. 병원으로 들어선다. 그때 그 아가씨가 또 나를 안는다. 또 그 장소다 기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뒷다리의 붕대가 풀려 나간다. 홀가분하다. 살짝 움직여 본다.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밖으로 나오니 할배가 기다리고 있다. 무지 반갑다. 할배가 이렇게 반가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흰 가운이 뭐라고 얘기한다. 할배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주의사항 뭐 그런 걸 텐데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 슬쩍 불안하다. 믿자. 믿어보자. 믿음이 있는 가정, 사회, 세상, 뭐 그런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아침에 눈을 뜬다. 할배·할매는 부산스럽다. 나는 이불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눈알만 굴려 주위를 쓰윽 한번 둘러본다. 우리 집이다.
‘그래, 이제 됐어.’
* 개 세이(개+에세이, 개+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