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교실에 교훈과 급훈 액자가 걸려 있었다. 주로 성실·근면·노력·협동 같은 올바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만한 덕목을 담은 단어들이었는데, 언제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교실의 액자에서 새로운 덕목을 담은 글자를 보게 된다. ‘하면 된다.’ 두둥~~
생소하고 어색하고 의아했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어서 생소하고, 글자가 많아서 어색하고, 하면 된다니 진짜 하면 되는 걸까? 의아했다. 최선의 노력을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슬금슬금 그 말에 불만이 생기는 거다. 단거리는 친구들과 비슷한 속도로 뛸 수 있지만 장거리를 뛰는 건 죽을 것 같은데 하면 되는 걸까? 이 과목은 쉽게 이해가 되는 데 저 과목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하면 되는 걸까? 하면 되는데 왜 안 되는 게 이렇게 많을까? 하는 그런 불충한 생각. 그렇지만 그런 내 작은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면 된다.’는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하면 된다.’ 정신으로 충만한 학창 시절과 군대 생활을 거치고, ‘하면 된다.’가 덕목인 직장생활까지 거쳤다. ‘하면 된다.’라는 도전정신의 덕이었을까?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으로 꼽히는 경제 대국이 되었고, 경제 발전에 힘입어 문화 강국의 위치도 점하게 되었다.
‘하면 된다.’라는 코미디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즈음인가? 문득 ‘하면 된다.’를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불충한 생각이 드는 거다. ‘되면 한다.’로. 그랬더니 느낌과 의미가 확 바뀐다. ‘하면 된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느낌인데, ‘되면 한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살짝 비겁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살았나? 하고 자문해 본다. 불행하게도(?) ‘되면 한다.’로 살아온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먼저 슬그머니 발을 담가본다. 간을 본다고 해야 하나? 그런 다음 될 것 같은 일을 선택하고 곁눈 팔지 않고 그 일에만 집중한다. 좋게 말하면 가능한지 아닌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성공의 확률이 높을 때 그 일을 해내는 합리적인 방법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될만한 일만 하는 의지가 약하고 도전정신이 없는 삶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삶이 성공하는 삶이었을까? 당연히 ‘하면 된다.’의 삶이겠지만, ‘되면 한다.’도 나름 합리적이고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되어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되는지 마는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이건 지나친 자기 합리화인가?
사실 ‘하면 된다.’와 ‘되면 한다.’를 대척점에 놓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하면 된다.’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세상일에 임하자는 의지의 표현이고, ‘되면 한다.’는 재능이 있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하는 선택의 문제이니 말이다. 어쨌건
최근 들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하는 일마다 모두 성공하거나 달성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뭔가를 하면 는다는 생각. 공부도, 운동도, 일도, 요리도, 심지어 잔소리와 걱정도 하면 할수록 는다. 한 만큼 체화되고 한 만큼 뭔가가 쌓인다는 얘기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게 뭐가 됐건 시작해 보자. 원하는 만큼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하면 할수록 늘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잔소리나 걱정까지 많이 해서 늘리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