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 사이에서 살짝 혼란스러워했던 어린 기억이 있다. 전자는 공부를 독려하는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말이고, 후자는 동네 어른들의 대화에 종종 등장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되는 아는 것과 힘이 되지 않는 아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지만, 앎과 모름을 얘기할 때 종종 농담으로 사용하며 웃기도 했다.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중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약보다는 힘 쪽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건강한 육체에 필요한 게 약보다는 운동을 통한 힘일 테니.
축구를 잘하지 못해서 축구 경기를 거의 보지 않았다. 한일전 정도만 챙겨볼 정도로. 그러던 것이 TV에서 축구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 슬금슬금 축구의 전술과 전략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된다. 그랬더니 축구 경기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골인이라는 결과만 보였는데 이제는 그 과정이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더 재미있어졌다는 거다. 야구도 그랬었다. 처음 야구 경기를 봤을 때 ‘저게 뭐라고 저렇게 열광하나?’였다. 그런데 경기 규칙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알아가는 것만큼 재미있어지는 거였다. 아는 것이 재미도 더하는 건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유명한 미술사학자의 말이니 미술 작품이나 문화재 등을 감상할 때 아는 것만큼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음악, 연극, 영화, 시, 소설 등 예술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을 테니, 안다는 건, 해박하다는 건 더 큰 즐거움과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축복받은 일이다. 이렇게 보면 아는 것은 확실히 힘이 된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알아야만 할까. 놉!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이 있다. 모든 일에 다 관여하고, 모든 대화에 다 끼어들고, 모든 분야를 다 아는 척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좋아할까? 이 또한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알지 못함이,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수도 있다. 특히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더욱.
많건 적건 사람이 모이는 곳에선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 왜 아니겠는가 산다는 게 갈등의 발생과 해소의 연속일 테니. 작은 친목 단체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사람에겐 촉이라는 게 있어서 구성원 대부분이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가끔은 촉이 없는 건지 무딘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사람 모두를 세상 편하고 해맑게 대한다. 모르니, 몰랐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르는 게 약? 맞다. 그러니까
때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편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