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려나?

by 김종열

망고의 엄청난 입이 내 몸통을 덮친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 기시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친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을까? 그랬을 테지 할배, 할매의 놀란 모습을 얼핏 본 듯했으니…


할배, 할매의 호들갑스런 비명과, 할배 친구의 재빠른 만류가 나를 살렸다. 망고가 이빨에 더 힘을 주고 나를 흔들기 직전에 나는 망고의 입에서 풀려났다.


할배와 할매가 내 몸 상태를 확인한다. 다행히 상처는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물렸던 등줄기가 아파오고, 무엇보다 그 큰 입의 날카로운 이빨에 대한 두려움이 트라우마가 되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몸이 떨린다. 멈추어지질 않는다. 서둘러 병원으로 출발한다.


우리 동네의 할배 정도의 나이가 될 것 같은 흰 가운은 지나치게 여유롭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흰 가운은 나의 아픔이나 불안함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감정의 이입도 없는 듯하다. 하긴 의사가 냉철해야 하긴 하지.


크게 다친 건 아니고 놀란 거라며, 그래도 모르니 하면서 파상풍 주사를 놓아주고는 집으로 가란다. 그리고 안정을 취하란다. 안정이란 게 취하고 싶다고 취해지는 거냐고? 내 몸은 여전히 떨림을 멈추지 않는다.


떨림은 다음날까지 계속된다. 밥은 넘어가지 않고 토하게 된다. 두려움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할배와 할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말로 위안 삼으며 이 시간을 넘기려 하고 있다. 정작 나는 지나갈 것 같지 않고, 시간이 약이 될 것 같지 않은데………… 그러나.

선지자들의 말은 거의, 항상, 대부분 맞다. 까만 밤과 하얀 낮이 반복될수록 트라우마도 조금씩 옅어져 갔으니 말이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짧은 내 삶에 왜 이런 고통이 생기는 걸까? 파양의 두려움, 분리됨에 대한 불안감, 약한 다리로 인한 아픔, 거기에 더해 대형견의 습격까지.

나만 그런 걸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인생살이가 공평하지 않듯이 견생도 공평치 않음이 당연할 테니까. 나보다 더 고통받는 강아지도 있을 것이고, 나보다 더 행복한 강아지도 있을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 생각을 바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행복한 강아지다. 안락한 집과 내게 충실한 집사가 있지 않은가, 그것도 둘씩이나.

그렇게 이 시간이 지나가게 하자. 어떤 일이 생겨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건 확실히 확실하니.


* 개 세이(개+에세이, 개+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