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진 등

투자자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 3편

by 긴오이
이미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만약 일정이 틀어지기 시작했다면, 감독자는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더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아래 단추들도 모두 구멍 한 칸씩 밀려가듯 일정도 그렇다. 다만 프로젝트의 일정은 단추 구멍과는 달라서 감독자는 자연스레 뒤이어 오는 일정들을 단축함으로써 밀려진 구멍들을 메우려 할 것이다. 이것은 가능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결단코 지켜지지 않은 일정이 나비 날갯짓이 되어 전체 프로젝트를 망치는 태풍을 몰고 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 따라서 지켜지지 못한 일정에 대해 용인할 수는 있겠지만, 그 미뤄진 일정이 끼치게 될 다음 일정은 반드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여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따라붙거나 그것의 징조가 나타날 때, 감독자는(행정, 토지주) 더 이상 사업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투자자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지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5년의 대부계약이 설정된 800억 상당의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자. 대개 대부계약서는 서식이 표준화되어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해 보면, 대부조건 제 몇 조에「 '을'은 대부 계약일로부터 1년 이내에 대부 목적사업을 시작하여야 하며, 대부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을 것이다.

또 그보다 앞선 조항에는 반드시 「'을'은 대부기간 내 영구시설물을 준공하고....」가 있을 것이다.

이 중 '1년 이내에 대부 목적사업을 시작하여야 하며'는 이른바 용인될 수 있는 일정의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을'은 대부기간 내 영구시설물을 준공하고'는 문구의 경중(輕重)이 확연히 다르다. '대부기간 내 준공'은 설령 타협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문구상 명확한 구속력을 지닌다. 기간 내 준공하지 못하면 일단 대부계약은 종료되는 것이며, 설령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갑'측에서 - 그것이 변덕이든, 변심이든 - 계약 연장을 승인하지 않으면 그걸로 쫑난 것이다. 투자자는 이것을 절대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계약서.jpg



보통 투자자가 착각하는 지점이 있다. 800억 상당의 투자는 일반인들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금액인 만큼, 모든 것이 호의적이고 우호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이다. 물론 로드맵에서 제시된 모든 일정을 투자자가 차질 없이 진행해나간다면, 투자자는 어느 곳을 가든 가장 상석에 자리를 배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그 호의는 바로 의심과 감시의 눈빛으로 이내 가늘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늘어진 눈초리는 이미 틀어진 일보다 다음 수순으로 따라올 그다음 일정이 지켜질 수 있는지와, 혹 지켜질 수 없다면 어느 지점까지 후퇴해야 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추궁하게 될 것이다.

이때 투자자가 섣부른 판단으로 다음 일정은 걱정마라는 식이나, 또는 인내할 수 없을 만큼의 딜레이 된 일정표를 슬그머니 제시한다면, 그때부터는 갑자기 차갑게 돌려진 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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