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의 허구
투자자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 11편
디벨로퍼는 분명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제가 디벨로퍼라는 단어를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에서 어느 분이 자신을 디베로퍼라 소개하는 것을 보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최근 재테크를 넘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동영상 강연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당연히 부동산 투자 강의도 빠질 수 없는데요. 저도 경매 관련 영상을 몇 번 찾아본 적이 있는지라 알고리즘이 저를 디벨로퍼의 세계로 안내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디벨로퍼란 단어를 들었을 때는 굉장히 세련되다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어에서 오는 생소함이 더해졌기 때문이겠죠. 그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의하는 사람의 신념과 자신감에 찬 어투였습니다. 흔히 딕션이 좋다고 하나요. 귀에 쏙쏙 박히는 게 산전수전 다 겪은, 한눈에도 내공이 상당한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선 장에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지만, 이 디벨로퍼의 세계는 고도의 전문성과 인내력이 요구됩니다.
보통 부동산 시행사업에서 오는 수익들은 그 단위가 너무 대단한 것들이 많아서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합의에 이르게 하는 것은 실로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려운 관계들을 모두 어레인지(Arrange)하고, 최종적으로 몽상에 불과했던 무형의 구조물을 현실로 소환하는 게 이 디벨로퍼들의 역량입니다. 정말 멋진 직업이며, 당연히 그들의 이익에는 정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장에선 또 이런 언급도 드렸었죠?
그들의 역량에 따라 그 이익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1군 시행사(디벨로퍼)들도 존재하지만, 하위의 엉터리 시행사들도 존재한다.
네. 이익이 큰 곳엔 언제나 질보다 양이죠.
앞서 우리는 아파트 분양사업을 통해 시행사가 이익을 얻어가는 사업구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익의 본질은 결국 사전에 상품을 구매하겠다는 확약, 즉 분양성을 담보로 창출되는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바로 디벨로퍼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자본시장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몇 가지 요건들이 더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그들의 전문성과는 별개로 금융시장에서 돈을 끌어오기 위해 요구되는 차주로서의 자격요건들 말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자기자본 - 에쿼티(Equity)란 단어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돈을 대는 사람들은 절대 허술하지 않습니다. 내 돈을 빌려가기 위해선 최소한 너의 돈 20% 정도는 들어와야 한다는 게 자본시장의 규칙입니다.
이 20%의 한도에 대해선 금융기관마다 다른 수치를 제시할 수 있지만 대개 통용되는 수준이 그 정도입니다. 단순히 금융기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만, 이 금융기관도 우리가 아는 제1금융에서부터 제2금융, 증권사, 신탁사, 보험 등 다양한 종류들이 존재하며, 이 모든 금융사들이 오늘날 이른바 시행사의 자금줄이 되고 있습니다. 디벨로퍼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지휘자입니다. 토목, 설계, 건축 등의 공사분야에서부터 재무, 회계, 금융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다루고 조율합니다. 기질적으로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이 필요하기에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직업군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디벨로퍼들이 이 모든 것을 일선에서 주관한다고 거기서 창출되는 이익의 전지전능한 배분자로 인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요? 조금 더 글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본래 의미의 PF(Project Financing)는 석유개발, 탄광 채굴, 조선소,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등, 프로젝트 자체의 사업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금융투자를 말합니다. 오직 프로젝트 자체의 사업성만 검토·검증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죠.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이 PF가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뒤로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담보대출처럼 차입자가 보유한 신용이나 자산을 담보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말이 PF지 리스크를 없애는 확실한 신용보강을 덧대야만 대주단이 돈을 대는 구조입니다.
투자유치 담당자로서 고민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확정된 현금흐름을 담보로 진행되는 이 시행사업을, 그것도 이중 삼중의 신용보강을 덧대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시행사업을 '진정한 의미의 디벨럽먼트(Development)로 볼 수 있냐는 것입니다. 사전에 확인된 분양률에 의거해 리스크는 거의 제거된 담보를 바탕으로 자금을 끌어오는, 본래 의미의 PF가 왜곡되어 보이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그들의 이익이 정말 정당한 것이냐는 의문 말입니다. 더구나 밑지는 것은 없어 보이는 이들을 위해 가격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이고, 하자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국공유지까지 제공하는 것은 어쩐지 꽃놀이 패를 쥐어주는 느낌입니다. 패가 훤히 보이는 화투장을 돌리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저의 얕은 식견으로는 수분양자인 소비자에게 모든 책임이 최종 전가되는 사업구조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전 분양된 그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믿음' 또한,
우리 소비자(수분양자)들로부터 근원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에 기반해 이익을 얻어가야 한다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투자자는 소비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투자를 자처하며 반짝이는 명함을 건네고, 다른 무엇도 아닌 저 분양상품을 기초로 하는 사업을 제안하는 시행자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분양권 혹은 회원권을 모집하는 리조트 사업이나, 생활형숙박, 그리고 골프장 사업을 제안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최종 수분양자의 담보대출을 딛고 서서 거기에 더해 미래의 공익적 수요에 대비하려는 국공유지마저 밟고 올라 서려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디벨로퍼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