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오늘은 편두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고등학교 때쯤이었나. 하루는 등교를 하는데 자동차 유리창에 반사된 햇살에 '윽'하고 눈을 찔렸다. 심봉사마냥 끔벅끔벅 회복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빛의 잔상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암점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고 필요 이상으로 의식이 집중됐다. 그 뭐냐. 매직아이를 시도하는 극도의 초집중처럼.
그리고 그것이 나타났다.
지금에야 이것이 편두통의 전조증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슨 벌레라고 해야 하나. 딱히 뭐라 정의할 순 없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형태를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과학책에서 보았던 아메반가, 짚신벌레인가가 떠올랐다. 아메바 쪽이 먼저 떠올라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어쨌든 이것은 반달처럼 구부러진 어른어른한 형태로 보통 시야 왼쪽 상단쯤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태양의 흑점처럼 작은 점으로 투명하게 이글 데다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는데 본격적인 형태를 이룰 쯤이면 어김없이 이 아메반가 짚신벌레인가 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과학책 현미경에서 보았던 딱 그것처럼 구불구불 위쪽으로 기어가다 서서히 사라진다. 덩치는 계속해서 키워가며....
어찌 보면 아주 천천히 안구 뒤편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마지막 단계쯤에선 크기가 꽤 커져서 거의 시야 전체를 가리게 되는데 이때는 앞도 잠시 캄캄해진다. 그리고 그 뒤에 편두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아주 깨질듯한 통증은 아니지만 머리를 흔들어보면 꽤 지끈지끈하다. 속도 메스껍고 체한 듯한 느낌도 있다. 가끔은 가슴을 두드리다 토를 하기도 하는데 한바탕 토를 하면 머리도, 속도 한결 나아진다. 한 번은 증상의 싹을 자르려고 일부러 목구멍 깊숙이 손가락을 먼저 찔러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두통에만 유효할 뿐, 내 친구 아메바에겐 전혀 타격감을 주지 못한다. 아메바로부터 도망칠 길은 없다. 눈을 감아도 얘는 계속 보인다. 감은 눈의 암전 속에서 빛이 어른어른 춤추고, 어푸어푸 눈을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두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아메바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편두통은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데 나를 긴장과 스트레스로 몰아넣는 건 거꾸로 이 아메바다.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잘 자는데 갑자기 이놈이 찾아와서 '니가 요즘 스트레스받는다며' 하는 격이다. 얌마 니가 문제라고.....
오랫동안 이 증상을 몇몇 사람에게 호소해 봤지만 이해하질 못했다. '아메바? 그게 뭔데.' '눈에 그런 게 비춘다고' '병원 가봐' 보다 먼저 이 증상이 일종의 질환이라는 것부터 공감받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설명 이전에 아메바에 대한 상상력을 먼저 끌어와야 하니 최초 발견한 질환을 환자가 보고하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증상이 나타날 때 마침 병원 문앞이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것은 '13일인데 마침 금요일이더라' 만큼 어림없는 타이밍이다. 아메바는 15분에서 30분 정도 출현한다. 내원을 계획해보기도 했지만 일단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안과? 신경과? 하다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최근에서야 처음 안과방문을 하고 이것이 안과 질환은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지금은 편두통 전조증상이라고만 쳐도 인터넷에 이 아메바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6년 전쯤만 해도 이런 자료들은 검색되지 않았는데.......
최근에 반가운 소식 중의 하나는 동종 인류를 만났다는 것.
40년이 넘어서 나는 이 증상을 똑같이 겪고 있는 한 불쌍한 인생을 조우했다. 그것도 같은 사무실에서. 우연히 수다중에 이 아메바 녀석이 또 나타났는데 '누구 타이레놀 좀 없어' 했더니 앞 팀 여자 동료가 진통제를 건넸다. 두통이냐길래 별 의미 없이 레퍼토리를 펼쳤더니 '어 저도 그래요' 소리가 나온 것이다.
지구에서 같은 행성인을 만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