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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Feb 26. 2023

연어의 노래를 들어라(下) / 양양

연어는 잡는게 아니라 보내는 것

거대하다는 건 때때로 사물의 본질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려.


- 하루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中에서

   




만약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서 우리 인간 위에 다른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더 겸손하고 숭고했을지 모른다. 두려움을 알고, 교만하지 않으며, 신에 기댈 줄 알고, 자제하고 순응할 줄 알았으리라.


나는 아직 고래를 본 적 없지만 만약 고래를 만난다면 그것이 나보다 하등한 생명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어 경외심과 함께 한쪽으로 공손히 비켜설 것임을 직감한다. 누구도 쉽게 눈길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고래가 뿜어대는 거대한 물줄기에 온몸이 젖었다고 세탁비를 청구하는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그날 내가 잡은 송어도 고래와 같았다.


송어의 머리에 작살을 꽂는 순간, 내가 왜 얼어붙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잔물결 속에는 도저히 존재하고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거대한 무엇이 마지막 호흡으로 몸부림쳤을 때, 붉은 피가 피어오르고, 동시에 나는 어떤 자연의 힘으로부터 이방인처럼 쑤욱 밀려난 것 같았다. 아주 잠시였지만 나는 그 육체적 에너지를 진하게 감지했고, 이내 늦은 오후의 윤슬이 나를 감쌌다.


연어는 산란을 위해 1만 km의 귀향길에 오른다.


북태평양 베링해 혹은 오호츠크해의 길고 긴 바다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거센 물살과 보와 바위와 맞서 싸우며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동안 온몸은 찢겨, 벌건 상처들이 가득하다. 연어는 생에 한번 산란을 하는데 산란을 위해 담수(민물)에 들어서게 되면 일체의 먹이활동을 중지한다. 오직 사력을 다해 강물을 거슬러 오를 뿐이다. 그날 작살을 두 번이나 맞고도 절대적으로 평온한, 그저 물풀처럼 흔들리기만 했던 송어는 이미 온 기력을 다한 상태였으리라. - 관통한 상처에 대해 고통을 표시할 기력마저 빼앗긴-

 나는 오랫동안 내가 끔. 찍. 한. 일. 을 저지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왔다. 그리하여 이 웅장하고 신비한 물고기의 왕에게 어떻게든 속죄의 기회를 가지고 싶어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부터 나는 이 물고기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동료 종으로서 어떤 숙연함을 가지게 되었다.


※ 바다송어 또한 회귀어종으로 연어의 한 종류에 속한다.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은 말이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 아니, 기분 같은 게 아니야. 마치 확 감싸인 것 같은 감각이야. 다시 말해서 매미나 개구리나 거미나 바람, 그 모두가 일체가 되어 우주를 흘러가는 거야"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그 여름날의 오후와 나무가 우거진 고분을 떠올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 매미나 개구리나 거미, 그리고 여름풀이나 바람을 위해 뭔가를 쓸 수가 있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고 말이지"

-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中에서 -


연어가 어떻게 정확히 모천을(목표지점)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지만 거꾸로 어느 시기가 되면 그들이 가까이 와있음은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멀리서 아주 서서히 들려온다. 늦은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불어오고, 어김없이 남대천의 억새들이 흔들리면 연. 어. 가. 돌. 아. 온. 다.


나는 그들의 에너지와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것이 -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 매우 행운 된 일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비록 내 삶에 어떤 드라마틱한 결과값을 던져주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일과 사람의 심도를 낮추고 포커싱을 계절이나 문학 같은 사유의 세계들로 맞춰주기 때문이다. 이 아웃포커싱은 적어도 내게 있어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운 것처럼, 남과 다른 나를 만드는 스페셜한 만족감을 준다. 염수와 담수에서의 삶이 동시에 병립되는 연어처럼, 물론 이 매혹적인 생명체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지만.


해마다 봄이면 아기연어들을 보낸다. 방류된  치어들이 바다로 나갈 쯤,  나의 여름 소매도 잠시 짧아졌다  다시 제자리를 찾는 가을즈음이 되면 어김없이 3~5년 전에  떠났던 선배 연어들이 돌아올 것이다.


떠난 것들과 돌아오는 것들의 순환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우리나라 연어는 보통 왼쪽의 첨연어를 말하는데, 그 해 내가 잡았던 송어는 연어의 한 종류인 스틸헤드송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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