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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Feb 24. 2023

연어의 노래를 들어라(上) / 양양

로컬하다는 것

피지컬이 주는 압도감이 있다.


어릴 적 멱도 감고, 낚시도 하던 이 하천(川) 바닥에 기껏해야 꺾지나, 모래무지, 피라미나 살겠거니 했지 이렇게 큰 연어가 헤엄쳐 올라올 거라곤.... 어른 종아리만 한 몸통들이 작정하고 힘을 쓸 땐 정말 수면 위로 물탕이 텀벙하고 튀어 오르곤 했다. 압도적인 크기는 물론,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정말 맘만 먹는다면 사람처럼 굴려댈 것 같은 그 눈동자를 마주쳤을 땐 이것이 민물의 어류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바다송어를 잡던 그날도 이런 기분이었다.


중학교 여름방학이었던가?


낚시질은 그만 싫증이 나고 한창 작살질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즈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네 살 난 아들내미가 들고 있을 법한 미니어처급 삼지창을 들고 나는 하루종일 물속에서 살았다. 대나무 끝에 노란 빤스 고무줄을 달고 그 탄력으로 쏘는 작살은 여간 노련하지 않고서는 재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물 속에서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참 나중에 안 것이지만 고무줄을 너무 힘주어 길게 잡지 않고, 톡톡 쏘는 것이 요령이다. 고무줄을 너무 힘주어 늘이면 물속 저항값만 커질 속도도 느려지고 명중률도 낮아진다. 목표물에 가까이 다가가 탄성의 끝점을 살리는 것이 요령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엄한 작살 끝만 돌부리에 구부려먹기 일쑤였다. 한 번은 친구 Y의 작살질을 물속에서 직관한 적이 있는데, 그의 작살질은 무하마드 알리의 잽과 같았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그 무하마드 알리의 잽(jab)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깊은 물에선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물고기들은 물가에서 놀다 위협을 받으면 곧잘 깊은 수심으로 냅다 도망치곤 했는데 Y는 흘러가는 물살에 저항 없이 몸을 싣고 그야말로 나비처럼 떠내려가며 속사포로 작살을 쏘았다. 수중발레를 하듯 부드럽게 발을 놀리며 거의 1초에 한 발씩 재고 쏘고, 재고 쏘는 녀석의 작살질은 거의 예술의 경지였다. 첫 발이 빗맞아도 다음 다음 쏘아지는 연이은 작살질에 물고기는 비틀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내가 전형적인 붕붕 훅이었다면 Y는 잰 잽으로 물고기를 몰아넣고 유린하는 수중 속 플라이급 어쌔신 정도쯤 되었달까. '이건 뭐 물속을 아예 작살내는구먼' 나는 감탄했다.

그리고 그 직관 덕분인지 나의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양양 남대천 상류 (어성전 계곡)



그리고 그 해 여름, 우리는 바다송어를 찔렀다.


먼저 발견한 것은 나였다. 그날 물살은 소나기가 내린 후여서 흰 포말을 더 많이 섞고 있었는데 물살에 떠내려가며 목표물을 탐색하던 와중, 나는 흰 포말 안쪽 거뭇한 바위 아래서 저기 위의 꿈벅하는 눈동자를 마주쳤던 것이다. 사람의 그것 같은 눈알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물속에서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방금 뭘 본거지' 가끔 큰 물이 나면 바다 송어가 올라온다는 소릴 들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조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Y와 동생인 J를 향해 소리쳤다.


"야! 지금 이 물속에 송어가 있어, 송어가 있다구"


흥분한 우리는 구역을 나눠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남대천에는 보들이 많이 설치돼 바다물고기들이 상류로 올라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가끔 어른들이 팔뚝만 한 송어나 황어를 잡았다는 소릴 들었지만 물속에서 실제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류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깄다! 여기" 득달같이 헤엄쳐 내려가니 Y가 이미 송어의 배에 작살 한방을 먼저 꽂아 놓고 꾸욱 누르고 있었다. "혹시 몰라 먼저 한 방 쐈어, 조심해서 한방 더 찍어, 그리고 바로 작살을 눌러, 안 그러면 도망갈 거야" Y는 나지막이 내게 속삭였다.


수경을 통해 보이는 송어는 정말 어마무시하게 컸다. 수경도 일종의 안경이라 물속 사물이 다소 볼록렌즈처럼 보이하지만 그래도 이건 처음 보는 크기다. 마치 1990년 作 「유치원에 간 사나이 」속 아놀드슈왈제너거를 올려다 보는 꼬마들의 느낌이 이렇지 않았을까. 평화롭게 흐르던 물살은 음악의 전조가 바뀐 갑자기 이질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Y가 쏜 작살은 꼬리 쪽 아랫배를 관통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송어는 그냥 가만히 아가미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윗 배에 작살을 한방 더 꽂아 넣었다. 순간 빗맞은 것이 아닌가 했다. 작살이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어! 뭐지' 분명 작살 끝은 송어의 윗 배를 관통하고 있는데 마치 흐물텅 하는 해파리에 명중한 느낌이다. 아무리 작은 물고기라도 작살이 관통할 때 작살대를 타고 올라오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생명의 몸부림 같은 것이다. 설령 빗맞더라도 물고기는 바람에 날리던 연이 허공에서 곤두박질치듯 나선형 떨림들을 전해온다. 그런 것들이 물속에서 물질감으로 느껴지곤 하는데 이번엔 그런 게 없다. 그야말로 허공에 삽질한 느낌이다. 송어는 아무 일 없는 듯 물풀처럼 흔들리고 있다. 놀란 나는 수면에서 얼굴을 떼고, 우선 가쁜 호흡부터 가다듬었다. 이내 Y의 작살은 그대로 두고 내가 다시 한번 머리를 찌르기로 눈짓했다.


그리고 물 에서 붉은 핏물이 흘렀다.


머리를 찍힌 송어는 물속에서 황소처럼 몸부림쳤다. 그 힘에 놀라 나는 하마터면 작살대를 놓칠 뻔했다. 흐릿한 붉은 빛이 시야를 가리고 나는 이내 이것이 내가 알던 물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틈에 숨어있다 툭툭 다른 돌틈으로 도망치는 얄미운 꺽지나 호흡을 참아가며 악착같이 던 은어는 아닌, 온전한 생명체로서, 어쩐지 두려움이나 슬픔, 운명, 심지어 죽음마저 이해하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생명체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물고기가 이런 피를 흘릴 수 있나? 이것은 잡았다라기 보다 무언가를 죽였다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송어의 피가 갑자기 피어오르고 이내 물길에 흘러내려가 물살은 금방 제 빛깔을 찾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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