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에 화상회의가 잡혔다.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얻었다고 출판사 관계자와의 미팅이 여간 설레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업무를 많이 다뤄봤지만 북(Book)사업은 또 처음이다. 무슨 말을 꺼낼까나. 업무수첩에 질문용물음표들을 여럿 그려놓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을 못하겠다. 그나저나 노트북으로 회의를 진행하라는데그러면 데스크톱 말고 회의실에다 세팅을 해야 하고, 헤드셋을 쓰고... 어?'K대리 헤드셋은 어디 있어? 헤드셋이 없으니 유선 이어폰을 쓰라고? 참 없어 보이게, 별수 없군'. 노트북을 열고 구글 미트(Google-Meet)에 접속하자까만 사각 화면이 나를반긴다. 회의에 참여할 준비가 되셨나요? 네 아무렴.
딸칵 클릭! PPT 전환 효과처럼 화면이 깜박이더니 이내 한 사람을 소환한다. 머냐. 이 오징어는.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 자주 까먹고 있을 뿐이지 - 처음 까까머리를했던 중교시절,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내 뒤통수가 궁금해졌고, 화장거울 앞에서 인공위성처럼 손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문득 비친 입체적 자신을 보고 '이게 나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뒤통수로 느껴지는 짱구각 정도나 확인하자고 했던 것이 그만 못생김의 판도라를 열어버린 듯 더러운 기분이 되었다. 절망감이라기엔 너무 나갔고, 깨달음·각성이라기엔 낭패감이 너무 컸다. 내가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외모적 가난은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단식이 아닌 복식부기에 기반한 총체적외모재무제표는빈 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솔직히 충격받았다. 생기다 만 꼴이라니. 나는 그때까지 내가 살짝 주걱턱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윗니가 아랫니를 안 덮네' 라고만생각했지 TV만화에서나 보던 마귀할멈의 그것을장착하고있을 줄이야. 입체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빈한 옆태에 뒤통수는 납작하고 코는 낮고 주둥이는 살짝 튀어나오고.... 갑자기 또 우울해진다.
늘 앞모습만 보아왔다. 앞모습만 비쳐보고,앞모습만 찍혀보고. 고개를 한껏 돌려도 시야각은 언제나 카메라 고정클립처럼 늘 앞모습에고정될수밖에 없었다. 앞모습만 보아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이라 생각했는데한 번도 잘생겼단 소리는들어보지 못했다.멀리서 봤을 땐 좀 생겨 보인다는, 딱 거기까지는 들어 봤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황이란다. '나보다 못생긴 놈들의 실없는 농담이라고만 생각했지, 원래 고만고만한 놈들끼리는 평가도 박한법이니까질투 어린 평가절하다' 싶었는데 그건 내 착각이고 다들 제 딴에는 나보다 다 잘 생겼다고 확신했나 보다. 나는 나를 착각하고 있었다.
못생겼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적자 재무를 인지하는 것과 같다. 좀처럼 기상이 뻗어나가지 못한다. 연애사업만봐도 이성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비칠 내 모습을 먼저 걱정한다. 코털이 삐져나왔나, 눈곱이 낀 건 아닌가, 입냄새가 나나? 상대의 시선에 나의 남루가 관찰되는 것 같아 시선이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다. 마음 안으로 많은 구멍을 뚫어놓고줄줄새어나갈 많은 것들을 걱정한다. 이래서야 상대의 마음을 훔칠 수가 있나. 못생긴 남자는그래서자의식의열등에먼저 마취주사를세게 꽂아야상대에 집중할 수 있나 보다. 안 그러면 영원히 관음적 연애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지도모른다.
덴고는 무리하게 살아 움직이는 아오마메와 현실적인 관계를 갖기보다 상상과 기억 속의 그녀와 아무도 몰래 관계를 맺는 쪽을 선택했다.
무라카미하루키 / 1Q84 中에서
정우성이 그랬지. 잘생겨서 안 좋은 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없어요'라고 했던 거. 다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들도 이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쩐지 업무도 잘되는 것 같고, 오가는 대화도 신선하다. 그 힘은 불가항력이다. 그 힘을 거부하려 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반대로 못생겨서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요? 라고 한다면 나는 '없어요'라고 단호히 말하겠다. 음 도저히 장점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좀 심각하다.
나의 못생김을 자각하는 건 기껏 올려놓은 퍼포먼스를 강제로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과 같다. 5×5 증량 프로그램을 빡세게 돌려 스콰트 1RM을 갱신해 놨더니 기껏 보람도 없이 몇 주만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격이다. 외모를 가꾸려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그냥 잘생긴 놈 앞에선 다 무용지물이더라'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봤다. 못생김은 중력의 작용과 같아서 떨어지려는 풍선에 계속해서 손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과 같다. 떨어지는 머리숱을, 떨어지는 자존감을, 처지는 살과 주름들을, 계속해서 업(up)해줘야 하는데 이 무한루프의 동기부여를 기계처럼 수행할 사람은 없다. 어느 시점엔 모두 나가떨어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다운그레이드(downgrade)를 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외모가 가진 어떤 숙명적 요소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것의 가치를 우리가 부단히 노력하여 얻게 될 여타 부산물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분명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화 같은 것들이 있다.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둘 중 하나인데 왜 하필 난 못생김의 운명을 타고난 걸까? 에서의 울화같은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도 봐라!
화상회의가 문제가 아니고 진짜 문제는 나를 올려다보는 이 카메라 각도다. 예각에서 둔각까지 180′의 그 모든 각을 다끌어온다해도 이 지랄 같은 못생김을 감출 수가 없다. 오늘따라 얼굴은 왜 더 추레한지. 데스크톱에 카메라를 걸었으면 턱 밑 이중턱은 걱정 안 해도 됐을 텐데 이 새끼들은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 중요한 걸 구비해놓지 않은 건지. 20대도 피해 가기 힘들다는 이 아랫각도를 마흔이 다 넘은 내가 어떻게 피해 가겠냐. 아!그냥 다 집어 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