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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Mar 20. 2023

또 못생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후 세시에 화상회의가 잡혔다.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얻었다고 출판사 관계자와의 미팅이 여간 설레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업무를 많이 다뤄봤지만 북(Book)사업은 또 처음이다. 무슨 말을 꺼낼까나. 업무수첩에 질문용 물음표들을 여럿 그려놓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을 못하겠다. 그나저나 노트북으로 회의를 진행하라는데 그러면 데스크톱 말고 회의실에다 세팅을 해야 하고, 헤드셋을 쓰고... 어? 'K대리 헤드셋은  어디 있어? 헤드셋이 없으니 유선 이어폰을 쓰라고? 참 없어 보이게, 별수 없군'. 노트북을 열고 구글 미트(Google-Meet)에 접속하자 까만 사각 화면이 나를 반긴다. 회의에 참여할 준비가 되셨나요? 네 아무렴.

딸칵 클릭! PPT 전환 효과처럼 화면이 깜박이더이내 한 사람을 소환한다. 머냐. 이 오징어는.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 자주 까먹고 있을 뿐이지 - 처음 까까머리를 했던 중교시절,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내 뒤통수가 궁금해졌고, 화장거울 앞에서 인공위성처럼 손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문득 비친 입체적 자신을 보고 '이게 나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뒤통수로 느껴지는 짱구각 정도나 확인하자고 했던 것이 그만 못생김의 판도라를 열어버린 듯 더러운 기분이 되었다. 절망감이라기엔 너무 나갔고, 달음·각성이라기엔 낭패감이 너무 컸다. 내가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외모적 가난은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는데 단식이 아닌 복식부기에 기반한 총체적 외모 재무제표는 빈 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솔직히 충격받았다. 생기다 만 꼴이라니. 나는 그때까지 내가 살짝 주걱턱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윗니가 아랫니를 안 덮네' 라고만 생각했지 TV만화에서나 보던 마귀할멈의 그것 장착하고  줄이야. 입체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빈한 옆태에 뒤통수는 납작하고 코는 낮고 주둥이는 살짝 튀어나오고.... 갑자기 또 우울해진다.


늘 앞모습만 보아왔다. 앞모습만 비쳐보고, 앞모습만 찍혀보고. 고개를 한껏 돌려도 시야각은 언제나 카메라 고정클립처럼 늘 앞모습에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앞모습만 보아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한 번도 잘생겼단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멀리서 봤을 땐 좀 생겨 보인다는, 딱 거기까지는 들어 봤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황이란다. '나보다 못생긴 놈들의 실없는 농담이라고만 생각했지, 원래 고만고만한 놈들끼리는 평가도 박한 법이니까 질투 어린 평가절하다' 싶었는데 그건 내 착각이고 다들 제 딴에는 나보다 다 잘 생겼다고 확신했나 보다. 나는 나를 착각하고 있었다.


못생겼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적자 재무를 인지하는 것과 같다. 좀처럼 기상뻗어나가지 못한다. 연애사업만 봐도 이성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비칠 내 모습을 먼저 걱정한다. 코털이 삐져나왔나, 눈곱이 낀 건 아닌가, 입냄새가 나나? 상대의 시선에 나의 남루가 관찰되는 것 같아 시선이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다. 마음 안으로 많은 구멍을 뚫어놓고 줄줄 새어나갈 많은 것들을 걱정한다. 이래서야 상대의 마음을 훔칠 수가 있나. 못생긴 남자는 그래서 자의식의 열등에 먼저 마취주사를 세게 꽂아야 상대에 집중할 수 있나 보다. 안 그러면 영원히 관음적 연애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지도 모른다.


덴고는 무리하게 살아 움직이는 아오마메와 현실적인 관계를 갖기보다 상상과 기억 속의 그녀와 아무도 몰래 관계를 맺는 쪽을 선택했다.      

무라카미하루키 / 1Q84 中에서


정우성이 그랬지. 잘생겨서 안 좋은 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없어요'라고 했던 거. 다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들도 이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쩐지 업무도 잘되는 것 같고, 오가는 대화도 신선하다. 그 힘은 불가항력이다. 그 힘을 거부하려 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반대로 못생겨서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요? 라고 한다면 나는 '없어요'라고 단호히 말하겠다. 음 도저히 장점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좀 심각하다.


나의 못생김을 자각하는 건 기껏 올려놓은 퍼포먼스를 강제로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과 같다. 5×5 증량 프로그램을 빡세게 돌려 스콰트 1RM을 갱신해 놨더니 기껏 보람도 없이 몇 주만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이다. 외모를 가꾸려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그냥 잘생긴 놈 앞에선 다 무용지물이더라'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봤다. 못생김은 중력의 작용과 같아서 떨어지려는 풍선에 계속해서 손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과 같다. 떨어지는 머리숱을, 떨어지는 자존감을, 처지는 살과 주름들을, 계속해서 업(up)해줘야 하는데 이 무한루프의 동기부여를 기계처럼 수행할 사람은 없다. 어느 시점엔 모두 나가떨어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다운그레이드(downgrade)를 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외모가 가진 어떤 숙명적 요소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것의 가치를 우리가 부단히 노력하여 얻게 될 여타 부산물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분명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화 같은 것들이 있다.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둘 중 하나인데 왜 하필 난 못생김의 운명을 타고난 걸까? 에서의 울화같은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도 봐라!


화상회의가 문제가 아니고 진짜 문제는 나를 올려다보는 이 카메라 각도다. 예각에서 둔각까지 180′의 그 모든 각을 다 끌어온다해도 이 지랄 같은 못생김을 감출 수가 없다. 오늘따라 얼굴은 왜 더 추레한지. 데스크톱에 카메라를 걸었으면 턱 밑 이중턱은 걱정 안 해도 됐을 텐데 이 새끼들은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 중요한 걸 구비해놓지 않은 건지. 20대도 피해 가기 힘들다는 이 아랫각도를 마흔이 다 넘은 내가 어떻게 피해 가겠냐. 아!그냥 다 집어 칠까 보다.




못생김은 이런 것과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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