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엔 나와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뿐이었다. 아까 들어올 때만 해도 애기 엄마로 보이는 한 여성분이 트레이드밀 위를 걷고 있었는데 곧 나갔다. 그녀는 퇴장했지만 내 의식 속에는 그녀가 잠시 남아 있었다. 분명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보다 큰 키에 날씬했지만 그것은 노력의 산물이라기보다 타고난 체형의 복에 가깝다. 좋은 복을 타고났음에도 그녀는 엉뚱하게 자신이 입고 있는 레깅스 복장을 의식하는 듯했다. 자신이 의식하는 부끄러움은 생각보다 남의 눈에 잘 띈다. 나는 들어오면서부터 그녀의 부끄러움을 감지했다. 내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데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며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나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아요'라는 마음으로 한 톤 밝게 "안녕하세요"를 건넸다. 그녀를 헬스장에서 마주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헬스장은 아파트 공용 헬스장인데 그녀는 최근에 등장한 뉴 페이스다. 난 주 3일 운동 성애자이지만 이래 봬도 이 커뮤니티 시설엔 오랜 터줏대감이다. 지난번 마주쳤을 땐 상황이 거꾸로 되어 내가 먼저 헬스장에 입장했고 한창 뒷구석에서 스콰트에 열중하고 있을 때 그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띵똥하고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별안간 조명 스위치 하나를 덜컥 내렸다. 스위치는 총 3개가 한 묶음인데 하나만 남기고 둘을 켜놨던 것을 하나로 줄여버린 것이다. 스콰트존은 갑자기 어둠의 존이 됐다. 모든 운동이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왕 중의 왕'이라 불리는 스콰트존은 괜스레 언짢아졌다. '누구인가? 누가 감히 짐의 영광스런 조명을 내렸느냐 말이다' 나는 헛하고 인기척을 내며 트레드밀 쪽을 바라봤다. 우리 헬스장은 2018년에 준공한 모브랜드의 꽤편한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문 디귿자 형태의 단지배치로 집사람의 기분을 언짢게 했는데 그나마 가운데 중정을 놓고 헬스장을 배치한 것이 큰 점수를 얻어 분양의 간택을 받은 바 있다. 구조상 지하 1층의 중정을 바라보고 놓인 헬스장이라 전면창으로는 빛이 잘 들어오지만 뒤편은 조금 어두운 편이다. 남녀노소 이용이 잦은 트레이드밀이 자연스럽게 창쪽으로 배치되고 무게충들을 위한 공간은 뒤쪽에 배치되었다. 나로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씩씩대는 호흡과 거칠어진 신음은 밝고 명랑한 아침 햇살 따위완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과묵한 도시의 수도승들이니까. 약간의 먼지와 땀과 쇠냄새를 마다치 않는다. 그것은 애슬릿함을 상징하는 체취들이다. 비치보이들의 산뜻한 스냅백을 거부하고 땀으로 소금기가 하얗게 쩐 낡은 MLB모자 쓰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층위의 언더(under)함을 수인했다고 우리의 그라운드를 낮게 밟아도 된다고 허락한 적은 없다. 집중을 흩트리는 무례한 매너엔 누구보다 날카롭다. 그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성별을 가볍게 제끼는 팔십 대 연배의 자세로 언제든 호통을 내려칠 준비가 되어있다. 헬스장 전기세쯤은 나도 고려할 줄 안다. 그래서 세 개의 스위치를 모두 올리지 않고 두 개만 올린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나로 줄여버리다니. 도대체 이 무례함은 뭐지. 역시 초보자인가?
스콰트에 대해 말해볼까. 지루하다고? 그냥 닥치고 들어주길 바란다. 넌 Shut Up and Souat! 도 모르냐?
이 운동의 유익함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도 입 아프니까. 이 운동의 위험함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생각해 봐라.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일정 중량이 니 몸무게 이상으로 올라가면 위험해진다. 리프트를 하건, 프레스를 하건, 스콰트를 하건 몸무게 이상의 무게부턴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게 좋다. 스스로의 삶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인데 니가 니 몸뚱아리 하나를 더 짊어진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하물며 스콰트는 몸무게의 1.5배, 혹은 2배, 3배까지 다루게 된다. 몸무게 2배를 어깨에 올리면 씨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번엔 깔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진다. 고관절을 접고 야무지게 스쾃자세로 내려가야 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고관절을 접었다간 그대로 인생 자체가 접혀서 다신 허리를 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런데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위치를 내리다니. 당신은 방금 날 죽일 뻔했어.
'불을 좀 켜겠습니다. 저쪽은 좀 어두워서요' 공손히 묻고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불을 탁 켰다. 그녀는 안 쪽에 사람이 있었던 것을 몰랐던 냥 당황하며 '죄송해요. 어쩐지 좀 밝은 듯해서' 그리고 이런 말을 이었던가. '부담스러......'
말끝을 흐려서인지 지금도 가물가물하다. 부담스러워서라고 했던가 부끄럽다고 했던가. 상황상 부끄럽다는 말을 했을 리 없지만 난 왜 그렇게 들렸지? 그때 그녀의 레깅스핏을 봤다. 그냥 멋대로 추측하자면 레깅스를 입은 지 얼마되지 않았나 보다. 헬스도 초짜고 레깅스도 초짠가? 둘 다 초짜라면 헬스장에 내려오기까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테지. 헬스장은 생각보다 많은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하는 장소다. 나이 많은 사람이 홍대 클럽 출입은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입문자가 선뜻 발들이기에는 위축부터 오는 장소다. 어쩐지 우락부락한 근육남들이 마초처럼 허엇허엇 하고 용을 쓰다 낯선 입장에 일시에 시선을 쭈욱 훑는 장면이 그려진다. 누구라도 그런 시선은 부담스럽다. 실상 전혀 적대적이지 않은 시선임에도 입장하는 입장에선 얼마 전 종료한 피지컬 100 괴물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도 몇 년을 이 운동을 하고서도 여전히 사설 헬스장의 입구에 붙어있는 보디빌더들의 대형 근육을 볼 때면 시선을 자동으로 떨구지 않는가. 아마 평생을 운동해도 저 대퇴사두엔 도달하지 못할 테지. 운동도 운동이지만 유전자는 타고나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그녀는 탁월까지는 아녀도 분명 좋은 유전자를 소유한 듯한데 뭐가 그리 불편한 걸까? 꾸준히 일 년만 운동한다면 그녀는 날씬함에 탄탄함까지 더할 것이다. 이런 비교까진 자존심 상하지만 매년 1%대의 근육량 감소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내 나이대를 감안하면 어느 순간 그녀의 인바디 수치가 나를 훌쩍 추월할지도 모른다. 노력의 범주를 넘어서는 유전적 우월함이라니. 그녀는 역시 무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여자라 다행이지, 같은 성별의 남자로서 차은우 같은 얼굴에 몸까지 키운다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니냐며 인터넷이 온통 난리다. 그래서 내가 정우성을 좋아하나. 난 여태 정우성이 본격적으로 몸을 키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기본 골격이 워낙 좋아 조금만 운동해도 넘사벽 피지컬이 될 텐데 겸손하기도 하지. 실상 이런 상상이 다 내 사념일지 모른다. 그녀는 다만 넓은 헬스장에 혼자 불을 훤히 켜는 게 부담스러웠을 뿐, 선량한 절약정신이 돋보이는 멋진 여성인데 못난 내가 괜히 고약한 매너의 초보 운동자로 둔갑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난 헬스장엔 여전히 나와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뿐이다. 스콰트렉 뒤에 평벤치를 놓고 호흡을 가다듬는 내가 보인다. 왜소함이 주는 유익함이 있다면 동안의 비결정도랄까. 작은 체구엔 세월의 흔적도 작게 패이는 법이다. 사이즈가 주는 귀여움은 늙음을 커버하는 힘이 있어서 대체적으로 동년배의 덩치들에 비해 어려 보인다. 거울에 비친 이 녀석도 그 수혜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다만 나이대의 풍채를 장착하지 못하면 직급도 어려 보이는 단점이 있다. 명함을 건네기 전까지는 옆에 섰던 윤주무관을 팀장으로 본 사람이 더 많지 않았나. 그런 편견이 싫어서 열심히 운동했는데 근육은 커녕, 여전히 일방적 해석과 단정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편협함이라니. 아.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생각이 복잡하지. 이게 다 그녀 때문이다. 역시 그녀는 무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