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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Apr 28. 2023

강원도에서 목포 생각하기

왜 목포를 생각했을까. 경상도 하면 부산, 전라도 하면 광주일 텐데 나는 목포를 생각했다. 목포가 나를 잡아 끈 이유가 있을 텐데. 작년에 방송된 우리들의 블루스 때문인가. 그때 목포의 인상이 좋긴 했지. 제주와 목포가 그렇게 형님 동생하고 지낼 줄은 몰랐다. 아마도 두 지역 간에 배편이 있어서 그런가 본데 아무래도 비행기보다야 배편이 주민들에겐 오리지널 교통수단이었을 테다. 그게 아니면 식객 허영만 선생의 백반기행에 나왔던 먹갈치 때문인가. 그때 본 목포의 노포들이 꽤나 매력적이긴 했다. 스테인리스 같은 동그란 깡통 식탁 위에 막걸리 잔을 놓고 무슨 조림인지 무침인지를 곁들여 음식 얘기를  피울 땐 나도 그만 TV속으로  빠져 들어갔으니깐. 그것도 아니라면 목포의 목자가 나무 목(木)자를 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목포는 항구요, 항구에 웬 나무 목자가 붙을까 싶어 그 목자도 꽤 어려운, 획이 꽤나 많은 복잡한 한자겠거니 했는데 내가 아는 그 나무 목자를 쓴다 하니 잠깐 귀를 의심했었다. 갑자기 전라도 저 끝의 목포가 친근하고 정감 있게 다가왔다. 나야말로 산 많고 나무 많은 그야말로 강원도의 목의 자손 아닌가. 목포사람도 강원도에 산 많고 나무 많은 정도는 것 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나는 목포를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사실 강원도 사람이 여간해선 전라도를 떠올리긴 힘들다. 멀기도 하거니와 좀체 인연이 없다. 수도권은 문화, 예술, 금융, 쇼핑이나 비즈니스 등 모든 면에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경상도나 충청도는 부산이나 그 외 몇 개의 광역시, 그리고 행정시가 있으니까 가끔 관광이든 업무로든 내려가곤 하는데 전라도는 당최. 이른바 강호축 연결을 위해 충청북도가 여로모로 애를 쓰고 있지만 강원과 호남을 연결해야 봐야 서로 주고받을 여객이나 물동량이 없으니 어려움이 많다. 나라 사정이 이럴진대 내가 목포를 찾는다는 건 무림의 화산파가 무당파를 만나러 가는 것만큼이나 대찬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출발할 땐 황사가 심했다. 이런, 워셔액을 뿌리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조금 나아진 듯했지만 크게 신통치는 않다. 카카오 내비는 목포까지 5시간 44분을 예상한다. 어이쿠 밥 먹고 뭐 하면 여섯 시간이 훌쩍 넘겠네. 괜히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원래 낭만은 머릿속에 있을 때나 낭만이지 밖으로 꺼내힘을 못쓴다. 아름다움은 해석이지 현상이 아니다. 겨울 바다도 카메라 시선 속에서나 아름다울 뿐이지, 해석이 없다면 달달 떨거나 비를 맞고 있을걸. 바가지에 부르르 떨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기왕에 마음먹은 거 작별인사도 다 했는데 다시 기어들어갈 수는 없다. 악셀레이터 올린 발에 꾸욱 힘을 더 실었다.


고속도로에 올라타니 한결 기분이 놓인다. 평소 같으면 지니 뮤직을 틀었을 텐데 오늘은 그냥 라디오를 켰다. 혼자 장거리를 타자니 외롭기도 하고 멜로디보단 사람의 음성이 듣고 싶다. 마침 MBC FM4U 오늘 아침 정지영 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감미롭기도 하지. 아침 방송은 잘 듣지 않는데 같이 일하는 형님이 즐겨 듣는 프로라고 일러 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10년 이상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2022년엔 자사로부터 브론즈 마우스 상이란 걸 받았다더라. 20년 이상 이어온 사람에게는 골든 마우스 상을 수여하는데 내가 아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철수 형님께서 2010년에 골든마우스를 받은 적이 있더라. 무려 20년을 진행하다니. - 올해로는 33주년이다 - 라디오는 요일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월화수목금토일이 다 방송일이다. 저녁 6시면 하늘이 두 쪽나도 무조건 마이크 앞에 앉아야 하는데 그 무시무시한 루틴의 중압감 견뎌내는 것이 가능한가. 가족과 어디 놀러 한번 못 가고, 그러다 보면 그 미안함의 반대편으로 언제고  번은 터지게 될 원망과 불평, 자조들이 있을 텐데 그것을 감내해 온 형님의 묵묵함이 대단. 방송 시스템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시간의 일부를 잡아다 매어 쇠고삐 묶듯 어디 한자리에 말뚝 꽂진 못 할 듯하다. 그것은 어쩐지 자초한 억압 같아 보인다. 아! 아닌가. 월급쟁이인 나도 결국 근로계약에 매인 소 한 마리 일수도. 하지만 월화수목금금금 연짱 근로는 못하겠다. 신실하다는 종교인도 특정 요일이 정해져 있는데... 갑자기 철수 형님이 존경스러워지네. 하지만 나도 안다. 이미 배캠은 배철수 그 자체란 걸. 얽매어 놨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어느 순간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주파수와 채널로 빙의해 이제는 형님 삶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걸. 문학판에도 이런 일들이 있다. 독촉 마감 전화에 피가 마르는 신문 연재로 출발했다가 분량이 쌓이자 어느 순간 작품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거꾸로 작가의 멱살을 잡아끌고 스스로 대하소설의 원대한 모습을 갖춰가지 않았나. 내가 보기에 철수 형님도 조정래 선생이나 박경리 선생님 못지않은 자기 분야의 완성형 사람이라 생각된다. 누구 말대로 '우리 시대가 모처럼 건진 걸출한 음악 전문 디스크자키' 임에 틀림없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차들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난 목포로 가는데 왜 서울까지 와서 ㄱ자로 내려가야 하지. 여기까지 오는데 벌써 두 시간이다. 두 시간을 달려왔는데 위도상으로는 전혀 남쪽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냥 대각선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이놈의 서울은 다 저를 통해서 가라는 건지. 갑자기 짜증 나네. 이놈의 서울 중심주의. 지방소멸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은 막 갖다 붙이면서도 막상 서울은 제 힘과 자본을 지방으로 이양할 생각이 없다. 그건 내가 잘 알지. 그래 너 잘났다. 길도 다 가져가고 버스도 다 가져.... 근데 뭔 버스가 이리 많냐. 반대편 차선으로 버스들이 줄줄이 서 있다. 뭔가 했더니 버스 전용 차선의 노선버스와 수학 여행단 버스가 콜라보가 돼 줄이 세상에 끝도 없다. 전국의 버스란 버스는 죄다 모인 것 같다. 아이들의 즐거운 수다들이 들리는 듯하다. 야들아. 나도 여행 가는 중이야.


시흥쯤에서 휴게소에 들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소고기 국밥을 시키고 난 272번 고갱님이 되어 얌전히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평일이라 혼자 앉아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 4인용 탁자를 다 채운 팀이 2팀도 못 되는 듯하다. 문득 목포 가서 혼밥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때는 혼자 곧 잘 먹었는데. 직장 생활하고부터 근 20여 년 넘게는 혼자 밥 먹을 일이 별로 없었구나. 음. 갑자기 짜릿해지는 걸. 난 국밥에 숟가락을 담그며 살짝 흥분했다. 사실 혼밥은 그리 문제가 안된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근육 만들어 주는 음식인데 혼자 먹는들 그게 무슨 문제인가. 음식의 섭취. 영양, 맛에 관심과 취향이 집중된 사람은 오히려 혼밥이 더 즐거울 수 있다. 백종원이 괜히 혼자 세계를 돌며 미식기행을 하는 게 아니다. 둘이나 셋이 떠났다면 아마 음식 소개의 깊이와 풍미면에서 퀄리티가 떨어졌을 걸. 난 국밥충인데 가족과 여행 가면 메뉴 선택에서 밀린다. 이거 그러고 보니 혼자 다니는 것도 좋잖아. 아까 라디오에서 바그너의 작품을 소개하던 초대 게스트가 4시간이 넘어가는 오페라 중간에 식사시간이 있는 경우가 있다며 자기는 그때 공연이 너무 좋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클래식 전문 패널이니 당연히 오페라가 좋았겠지만 음식도 그에 못지않았음을 난 그의 목소리에서 눈치챘다.


목포로 내려가는 길은 허리가 좀 아프다. 군산 금강유역쯤에 이르러서는 왼쪽 다리에 피가 안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요즘 척추협착증상을 보이시는데 나도 척추가 안 좋나. 갑자기 아버지를 졸라 주문진까지 나가서 자전거를 사고 집까지 끌고 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강릉시에 편입된 주문진에서 행정구역을 넘어 양양 집까지 장장 60킬로 거리를 아버지랑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그때 비포장길에서만 살던 내가 7번 국도 아스팔트길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아버지 허리를 꼭 붙들고 가다 허벅지에 자꾸 쥐가 나서 30분마다 쉬어가곤 했다. 아버진 그때 나를 내려보며 빙그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길이 천리인데 자꾸만 지체되는 귀갓길을 걱정하셨을까. 그냥 기다리다 편하게 버스나 탈걸 후회하셨을까. 아니다. 아버지도 낯선 동네에 우두커니 몇 시간을 버스나 기다리자고 소비하긴 싫었을 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가보자는 심산이었겠지. 덕분에 아름다운 자전거 동행은 부자간 큰 추억으로 각인됐다. 지금도 왼다리가 저릿저릿한 게 딱 그날의 느낌이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는 거지 뭐.


목포에 거의 다 와가는 것 같다. 산들의 기세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구릉들도 많이 보이고, 근데 여기는 밭들이 황토색이구나. 강원도는 짙은 검붉은 색인데. 어쩐지 당근이 잘 자랄 것 같은 토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입실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한 문구가 눈에 띈다. 홍어 반입 절대 금지! 갑자기 목포에 도착한 것이 확 실감 났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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