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오이 May 02. 2023

강원도에서 목포 생각하기(2편)

목포에 도착하면 바다가 격하게 환영해 줄 줄 알았는데 얕은 내리막길이 계속됐다. 요즘 외곽은 대부분 도시계획상 2·3종 주거단지인 듯하다. 아파트들이 먼저 나를 반긴다. 특별히 관광목적이 아닐 때 나는 숙소를 정하기 위해 다음지도의 스카이뷰를 켜고 그 위에 지적편집도를 입힌다. 그러면 도시의 용도지역들이 한눈에 보이는데 그중 중심 상업지역을 찾아 들어가면 숙소도 저렴하고 주위에 식당도 많아 편하다. 목포엔 미리 평화광장을 찍어 놨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내비 줄눈이에 이윽고 도착 깃발이 짠하고 서더니 그리고 바다가 펼쳐졌다. 바람 부는 목포란. 이게 목포란 말이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머리칼이 춤춘다. 동해안은 도로와 바다 사이에 모래해변이 펼쳐져 있는 반면, 목포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의 도심이 바다와 직접 몸을 맞대고 있다. 항구도시라 저 멀리 테라포트들이 바다를 막고 대교와 길의 역할을 위해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배들이 지나가고 조깅하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다. 다섯 시가 다 되었으니 한 일곱 시간쯤 걸렸나. 몸 좀 풀 겸 난 갈매기들과 광장 거리를 거닐었다.  


근처에 적당한 밥집이 없어서 노포들이 많다는 목포항으로 이동했다. 목포항엔 연안여객선 터미널과 국제여객 터미널이 인접해 있는데 국제터미널에 제주로 가는 커다란 페리호가 정박해 있었다. 엄청 크다. 저기에 차를 실으면 바로 제주로 가겠구만. 내가 목포를 찾듯 목포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매일 도서지역 작은 섬들을 실어 나르느라 고단했을텐데. 가끔은 동해로 남해로 조타를 바꾸고 싶은 날도 있겠지. 내가 이번에 목포에 내려오게 된 것은 장기재직 휴가 덕분이다. 재직 10~20년 차 중 10일간의 장기재직 휴가가 주어지는데 20년 차 고개를 넘어버리면 휴가는 사라진다. 뭐 그리 열심히 일한다고 그간 소진을 못하다가 다음 달이면 사라진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떠나 온 길이다. 나이에 혼자 여행이라니. 집사람도 아이도 자기 일상이 있으니 갑자기 짐을 쌀 수는 없었다. 상황에 내몰리는 건 딱 질색인데 이건 시간에 내몰린 격이라 당황했다. 물갈이를 위해 잠시 새 어항에 옮겨진 물고기 같다. 새 어항엔 책상도 컴퓨터도 결재서류도 없는데 딱 하나 시계 하나가 가만히 서서 내가 어쩌나 보며 재깍대고 . 난 지금 좋은 건가? 쉬는 건 좋지만 일주일이 넘는 여유를 집에서 뭉개다간 쏟아지는 잔소리와 핀잔으로 온통 피폐해질 게 뻔하다. 그럴 순 없지. 순도 100%의 투명한 시간을 그렇게 흙탕 지울 순 없다. 안 보여줘서 그렇지 이 몸과 정신에도 깊은 낭만과 지성, 자유가 깃든 시절이 있었다구. 갑자기 그것을 꺼내 보이고 싶단 욕구가 밀려왔. 처음엔 '집에서 놀아서 좋겠네' 란 아내와 아이의 장난기 섞인 비아냥에 항거하기 위해 계획된 여정이었으나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 안에 아직도 뭔가가 잠들어 있는지 확인 좀 해봐야겠어. 목포는 그에 걸맞은 적당한 순례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터미널 근처를 돌다 갈치조림 간판이 보여 들어갔다. 주문을 받는데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종업원의 목소리가 동굴 저음이 나서 놀랐다. 류지광이라는 가수가 있는데 딱 이런 목소리다. 베싸메베싸메무쳐~ 할 땐 남자마저 자지러진다. 목포에서 처음 시작하는 혼밥인데 보이스로 먼저 환영받는 느낌이다. 내가 맨 처음 손님이고 뒤이어 어머니를 모신 따님 두 분, 그리고 부부 한쌍이 들어왔다. 내가 먹갈치 조림을 시키자 똑같이 메뉴를 선택한다. 부부팀은 메뉴가 비싸다고 잠시 투덜대더니 다른 메뉴로 바꾼다. 먹갈치는 제주 갈치보다 토막이 작다. 그리고 조림이지만 국물이 자박자박하다. 맛은 갈치 맛이 갈치 맛이지, 막 특별하지는 않다. 대신 혼밥의 분위기가 전혀 위화감이 없다. 왁자한 술꾼들의 억센 사투리와 억양을 상상했는데  '엄마 이것 좀 드셔보세요' 같은 나긋한 대화들이 오고 가서였을까. 밥 두 공기를 먹어치웠다. 장모님도 갈치조림엔 일가견이 있는데. 장모는 갈치를 먼저 살짝 튀기고 조림을 한다. 그러면 더 깊고 고소한 맛이 난단다. 장모는 경상도에 사니까 그건 경상도의 맛이고, 여기 전라도 먹갈친 좀 더 바다의 비릿함이 스며든 맛이다. 흠. 나도 꽤 미식가다운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걸. 난 여행의 즐거움을 식도락에서 찾는 편이다. 신체적으로도 시력은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는 반면, 미각만큼은 '워, 사롸있네~요~잉'  연일 외치고 있다. 맛이 받쳐주지 못하는 관광지는 없다. 시간상 관광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한다면 눈보다 혀에 그곳을 새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시각 정보는 단편적이지만 미각엔 후각과 시각이 섞여 들어 좀 더 복합적이다. 더 깊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밥을 먹고 나니 저녁 7시쯤 되었다. 오던 길에 목포 갓바위 표지를 봤는데 절벽에 생긴 풍화물이라 무슨 배를 타고 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소화 좀 시킬 겸 갓바위에 가 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해가 서서히 넘어간다. 비를 따라가니 처음 도착한 평화공원 옆에 갓바위가 있었다. 바다 위로 해상보행교가 깔려 있어 감상하기 편하다. 시간이 조금 늦어 저녁노을 대신 야간 조명을 한껏 받고 있는 갓바위를 대면했다. 갓바위는 풍화와 해식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풍화혈인데 이름 그대로 갓을 쓴 사람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엔 슬픈 전설이 얽혀 있는데 한 청년이 병든 아버지를 치료하려고 부잣집 머슴살이로 들어가 열심히 일했으나 주인이 품삯을 주지 않아 지체되어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버지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아들이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다 모시려다 실수로 관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단다. 또한 번의 불효를 통한하며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다 아들도 죽고 말았다.  훗날 그 자리에 두 개의 바위가 솟아올랐는데 사람들은 큰 바위를 '아버지 바위', 작은 바위를 '아들바위'라고 불렀다 한다. 갸우뚱 기대어 있는 두 바위가 전설처럼 애틋함을 더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다독이는 것 같다. 괜찮다고. 갑자기 나도 아버지 생각이 또 나네.


- 목포 갓바위 -



날이 어둑해졌다. 여행 첫날의 감상이라도 적을 겸, 근처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켜기로 했다. 아까 평화광장 앞에서 스타벅스를 봤는데 거기 가야지. 주차하고 스벅 앞에 섰는데 이층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 사람 많으면 싫은데...' 평일이라 다소 한가할 줄 알고 왔더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사실 난 스타벅스가 부담스럽다. 뭔가 젊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공간인데 나이 많은 아저씨가 끼어드는 느낌이라 불편하다. 거기 가면 왠지 리스트레토 비안코나, 프라푸치노 같은 걸 시켜야 할 것 같은 난 주 메뉴가 뜨아다. 커피로만 보자면야 몇 년을 직접 드립 커피만 내려 마실 만큼 나름 커피 애호가지만 그런 걸 자랑하려면 어디 박이추 커피공장 같은 데나 가라고 말할 것만 같다. 이봐,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너희들이 죽고 못 사는 카푸치노, 라떼 , 코르타도가 다 에스프레소의 다양한 벨리에이션의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는 있니? 지금이야 이것저것 섞인 형형색색의 커피음료들이 좋겠지만 그런 튜닝 커피들은 결국 돌고 돌아 에스프레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속으로 여기까지 생각하다 아차 싶었다. 이런 꼰대감이라니. 촌스럽게. 이래서야 저 개성 넘치는 젊은 연인들 사이에 박혀 노트북을 켜는 건 내가 생각해도 언밸런스하다. 더구나 난 지금 제대로 된 노트북 가방도 아니고 대충 에코백에다 쑤셔 넣은 노트북을 들고 서 있지 않은가. 도저히 안 되겠네. 옆에 '이디야'나 가야겠다. 이디야엔 사람이 거의 없다. 같은 커피 매장인데 이렇게 브랜드 취향이 갈려서야 내가 어떻게 스벅을 맘 편히 갈 수 있겠나.     


이층 구석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창밖으로는 이미 어둠이 짙게 드리웠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노골적이지 않는 목포의 환대는 편안함을 준다. 뭔가 잘 써질 것 같은 느낌. 첫 문장은 '출발할 땐 황사가 심했다' 로 시작하려 했으나 이내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왜 목포를 생각했을까'로 고쳐 적었다.

(3편까지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강원도에서 목포 생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