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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May 04. 2023

강원도에서 목포 생각하기(마지막 편)

목포에 비가 내린다. 어젯밤엔 한 숨도 못 잤다. 늦게 숙소를 잡아 들어가긴 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왔다. 글을 쓰느라 카페에서 늦게까지 커피를 마신 탓인지, 아니면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정말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하지만 한 숨도 못 잔 것치곤 다음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술도 안 먹었는데 아침은 해장국으로 때우고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비가 오니 선택한 옵션인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차 안에 누워 개장을 기다렸다. 갑자기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주현미가 부른 줄 알았더니 원래는 목포의 딸 이난영이 부른 노래더라. 구슬픈 가락이 비 오는 날과 딱 어울린다. 가사에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이 노래는 목포만의 노래가 아니라 나라 잃은 겨레의 슬픔을 노래했다란 해석이 있다.

기념관에서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 돌아가신 분이지만 모형 전시물로 손을 내밀고 계시길래 가만히 잡아 보았다. 대통령은 신안에서 태어나셨는데 4학년 때 목포로 이사 나오셨다 한다. 목포진 역사공원에 가면 소년 김대중의 공부방을 만나 볼 수 있다.


- 소년 김대중 공부방 -


목포진에선 목포 전역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 노적봉과 유달산이 옆으로 보이고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지나간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를 구경하며 목포진에 오르면 되는데 비가 와서인지 한적한 거리는 둘러보기 편했다. 목포가 3차례의 간척사업 끝에 탄생한 도시라는 건 목포 근대역사관에 들어갔다 알았다. 특히 목포의 구도심은 식민지 일본 등의 외국자본에 의해 간척된 계획도시라 도로가 격자식으로 잘 형성되어 있다. 군산시, 여수시와 함께 호남 3대 항구로 한 때 남한 6대 도시에 속했다. 현대에 와선 군산항과 마찬가지로 내해 수심이 얕아 대규모 무역항으로 쓰이기엔 입지가 나빠져 부산항과 인천항에 명성을 내주고 말았다.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한 목포의 설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 목포진 전경 -


오전 시간이 꽉 차게 목포를 구경하다, 갑자기 오게 된 것처럼 갑자기 목포를 떠나기로 했다. 올 땐 좌표 찍고 목포만 바라보고 왔는데 올라가는 길엔 여기저기 좀 둘러보며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목포 이틀, 군산 이틀 일정을 계획했는데 갑자기 나주 곰탕이 먹고 싶어졌다. 국밥충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 나주 곰탕을 안 먹고 가면 두고두고 후회가 클 것 같다. 나주에 들른다면 광주를 또 지나칠 순 없잖아. 잠시 선열들께 인사라도 드리고 올라가야지. 유달산 너머 목포대교와 진도의 여러 섬들은 아무래도 잠시 킵해놔야겠다. 또 언제 올 날이 있겠냐만 욕심부리자면 한 달 살이도 모자랄 판이다. 사는 곳이 끝과 끝인데 그래도 한 번 와서 '밥 좀 주쇼잉' 하고 주문 한번 주고받았다는 것도 어딘가. 목포와의 인연도 딱 그만큼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려올 때부터 이런 작별을 예상한 것 같다. 내려온 거리만큼 비례하여 뭐라도 더 얻어가겠다는 건 내 욕심일 뿐, 곧 심드렁해질 내 기질과 서로 충돌할 것을 알았다. 그게 감지되면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었다. 뭐 하나 더 보려고 빨빨거려 봐야 욕심을 앞세우고 걸으면 감상이 사라진다. 아름다움은 해석이지 현상이 아니라고 되뇌지 않았나. 애초에 목포는 어떤 지향점이었다. 몸이 떠나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완성되는 의미 같은 것이랄까. 즉흥적인 의지와 낭만을 꺾는 얼마나 많은 핑계들이 있는가. 그 핑계들은 늘 내 에고의 중요한 지점을 지날 때마다 봄나물을 꺾는 손처럼 거칠기 이를 데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 거친 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목포에 도착하였으므로 나는 이미 만족한다. 억지 감상은 글쓰기에도 안 좋다. 지금은 나주 곰탕이다. 한번 생각이 입력되자 마음은 이미 목포를 떠나고 있었다. 내 여행이 이런 식이라면 많은 도시들이 상처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도 돈도 유한한 내가 어디든 넓이 머물진 못하겠지. 대신 깊이로 머물겠다. 내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땅과 도시들이 수두룩하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땅덩이에서 시간 핑계 대고 돈 핑계 대다 고만고만 살다 가고 말 듯하다. 그건 좀 슬프잖아. 이 작은 몸뚱이에 뭐 그리 대단한 취향이 자리한 것도 아닌데 앞으론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이번 목포처럼 다녀볼 생각이다. 기껏 일탈해 봐야 서울·경기 정도나 생각하는 좀스러운 사고는 이제 그만 bye-bye 하자.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정박해 있을 때야말로 가장 안전하겠만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라고. 그럼, 목포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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