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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May 18. 2023

남자 혼자 펜션 방을 잡아 봤습니다

선유도에서 혼자 1박 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아까 고군산 대교를 넘어올 때 마치 톰크루즈「우주전쟁」에 나오는 다리 세 개 달린 거대한 우주선 모양의 외팔 현수교를 보며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여기 잠깐 붙들릴 수도 있겠단 걸.


SF적 교량과 달리 넘어간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은 멜로처럼 차분했다. 갯벌에 드문드문 올려진 어선 몇 척은 끼우뚱하니 그대로 그림 같았다. 갯벌은 정말 오랜만이네. 낙조가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장자도까지 들어갔다 크게 동하는 것이 없어 천천히 차를 돌리던 와중, 왼편으로 줄지은 차 2대를 보고 함께 따라 핸들을 꺾었다. 바다와 수평을 맞춘 낮은 도로가 깔리며 선유도 해수욕장과 건너편 바위 봉우리 2개가 눈에 들어왔다. 선유도는 그렇게 한적하니 나를 맞이했다.


작은 섬이지만 초등학교도 있고 우체국도 있고 파출소도 있는 걸 보니 여기 군락들 중에는 선유도가 중심인가 보다. 간조기라 그런지 안쪽 바다는 넓게 갯벌이 마른 운동장마냥 펼쳐져 있었다. 낯선 동네지만 마음이 편하다. 일 년 중에 하늘색과 바다색이 채도가 같아지는 시기는 얼마나 될까? 보통은 바다가 좀 더 짙은 색을 띠지만 4월 말인 지금은 바다가 하늘 같고 하늘이 바다 같다. 온통 파스텔톤 파랑이다 보니 더 가볍고 여유로운 느낌 든다. 라이트한 생각을 해서 그런가.  편의점에 들어갔다 충동적으로 담배 한 갑을 샀다. 담배를 끊은 지는 한 7년쯤 는데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한 대씩 필 때가 있다. 일종의 포상 흡연으로 잘 끊고 잘 참는 게 기특해서 가끔 나의 타락을 내가 눈감아 준다. 보통은 여행 때 이런 관대함을 베풀지만 별도일 년 중 12월 31일은 공식적으로 한대 피는 날로 정하고 있다.


후~ 에세 0.5mg은 여전히 맛있구나. 이보다 니코틴 함양이 높으면 첫 모금에 머리가 핑하고 폐가 까끌한 느낌이 난다. 운동을 하고부터는 몸에 안 좋은 것이 들어오면 그것이 고 지나가는 신체기관들의 생채기가 상상되곤 한다. 그게  너무 생생해서 가끔 이렇게 한 대씩 피긴 해도 내가 다시 흡연충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흡연에 대해서 만큼은 그런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자신감은 내게 아주 중요하다. 이런 자신감을 내 신체나 업무, 대인 관계에도 정립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 텐데. 어쩌다 오솔길로 빠지더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원길을 찾아올  있다는 그런 확신은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준다. 그런 안도감은 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다. 흡연은 해롭지만 지금 담배 한 개비가 주는 이 알싸한 쾌락나는 지금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담배 한 개비만 꺼내고 남은 담배는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다행히 현재 여기까지의 에어로졸은 가능한 남자다.


펜션 주인과 통화했다. 우체국 옆에 있는 펜션인데 그 앞에 또 파출소도 있어서 뭔가 외교관이 묵는 공관 같은 신뢰감을 준다. 원래는 십일만 원인데 남자 혼자라니 만원 깎아주신다. 나도 뭔가 신뢰감을 주나 보다. 군산에 나가 계신다며 계좌입금하니 바로 방 비밀번호를 알려주셨. 펜션을 잡은 데에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기운을 만끽하다 다시 시내로 들어가 싸구려 모텔방을 잡고 싶진 않았다. 그것은 모처럼 고양된 감성에 찬 물을 끼얹는 행위다. 거기에 하나 더 꼽자면 이대로 1박을 하며 집필에 몰두하는 작가적 삶은 어떤 것일까 엿보고 싶은 마음정도. 어쩐지 여기서라면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청새치의 점프 정도는 보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혹은 그가 아끼고 사랑한 키웨스트의「슬로피 조스바」같은 단골 술집의 네온간판을 만나볼 것 같은..... 그러니까 여기서 1박을 하면 이 위대한 창작가의 여행지의 아침과, 그 여행지에서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몇 걸음 걸어 마른 빵을 얻어먹고, 커피를 마시며, 커다란 시가를 물고 글을 쓰는 분위기를 슬쩍 간접 체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에 가까운 기대감이 든다. 여행을 사랑한 이 양반의 자유로운 영혼과 영감에 살짝 노크만 시도해봐도 그것이 내 취향과 부합될않을지 감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여 내가 여행을 가까이하며 노년에도 글을 쓰길 바란다면 이 창작활동이 헬스처럼 내 삶에 착 달라붙어 친밀한 어깨를 두를지 미리 프로토타입 정도는 그려봐야 하지 않나. 이번 여행이 거기까지만 확인해 줘도 나는 대단한 여정을 밟은 셈이다. 여주인은 왠지 들어올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비수기라 손님은 나 밖에 없어서 독채를 빌린 것 마냥 마음이 부유해졌다. 이 기분 이대로 저녁엔 해물탕 같은 비싼 메뉴를 먹어야지. 난 낙조를 보러 걸으며 피식 웃었다.



확실히 서해안의 해지는 모습은 낭만적이다.  낙조를 보고 키스를 하지 않는 연인들이 있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을 해 봤다. 곧 사라질 자연현상을 앞에 두고 그에 걸맞은 인간의 행위가 있다면 나는 낭만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혼자만 아니라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색인가. 낙조의 과정은 동해안 해 뜨는 과정의 역재생이란 표현이 꼭 맞을 것 같다. 낙조든 일출이든 멈춰진 사진으로만 본다면 둘 중 어느 과정인지 알아맞히기 힘들다. 서쪽에 있으면 낙조(일몰)고 동쪽에 있으면 일출이다. 사는 게 바빠서 내가 사는 건지 죽는 건지 모르겠다 싶어도 어느 쪽에든 빛나는 가치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저 낙조가 저리 붉게 탈 이유가 있을까.



저녁엔 비싼 메뉴를 먹으려고 했는데 해물탕 대자가 10만 원이더라. 소자는 6만 원.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식자재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단 거. 이젠 만 원짜리 미만 메뉴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밥집 사장님들도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국밥값을 만원으로 올렸다. 이건 강원도에서부터 전라도 끝까지  마찬가지다. 이번 여행에 국밥을 얼마나 먹었던지 국밥충이 세상에 국밥이 다 물린다. 나는 고르고 고르다 멍게비빔밥을 시켰다. 주문 즉시 상큼한 멍게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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