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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May 12. 2023

마약같은 도로 새만금 방조제

BTS "봄날"을 듣다.

잘 놓여진 도로를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것은 정신적으로 유익하다. 얼마나 유익하냐면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공서비스의 하나로 채택하여야 할 정도다. 아우토반이 독일 국민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연구한 논문은 눈 씻고 찾아봐야 없겠지. 누구라도 한번 써보면 학위 논문으로 꽤 그렇듯 할 텐데. 아니, 박사학위로도 모자라지 않을 듯하다. 이번 목포여행을 통틀어 가장 멋진 경험 중의 하나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새만금 방조제 도로 위에서 일어났다. 광주를 떠나 군산에 도착한 나는 뻘쭘한 이방인의 자세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커피나 마실 겸 군산 세관 옆 먹방이네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엔 양이 거북하여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켜 놓고 시선을 굴리다 우연찮게 고군산군도 드라이브 코스를 보게 되었다. 군산시 옆 작은 섬들을 연결한 드라이브 코스라는데 신시도를 비롯한 장자도·대장도 선유도 등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석양이 지는 낙조가 일품이란다. 낯선 곳의 어색함을 물리치는 데는 차 안의 공간만큼 안정감을 주는 곳도 없다.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비롯해 군산거리 일대가 다소 바람이 심하길래 나는 조금 더 운전하며 긴장감을 풀기로 했다. 마침 고군산군도의 여러 다리와 해안도로, 그리고 낙조는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내비에 나타나기 전까진 군산 옆에 새만금 국가산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쭉 뻗은 도로 옆으로 새만금 개발청 건물이 보이고 자로 젠 듯 일자도로가 펼쳐지길래 간척사업으로 유명한 그곳이구나 정도만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비를 따라가던 중 도로가 90˚로 꺾이며 '새만금 방문을 환영합니다' 란 격한 환영 표지판이 나타났다. 그때 내가 무슨 노래를 듣고 있었더라.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는 "하이 빅스비! BTS 노래 틀어줘"라고 주문했다. 갤럭시 주크박스 첫 곡으로  BTS '봄날'을 선곡했다. 곧게 뻗은 도로 위로 차는 착 가라앉듯 가속되기 시작했고 이젠 한물가긴 했지만 둥둥한 BOSS 오디오의 볼륨도 함께 고조되기 시작했다. 아마 교량이 시작되는 듯 약간 경사진 도로 위로는 맑은 하늘만 올려다 보였다. 느긋하게 등을 시트에 묻으려는 순간, 갑자기 시선이 파랗게 터지더니 양 옆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어?


드넓은 바다를 한쪽으로 두고 달리는 거랑 양 옆에 펼치고 달리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나는 갑자기 바다 위를 날고 있단 착각이 들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마침 정국과 제이홉, 진, 뷔의 목소리가 번갈아 교차하며 봄날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나는 처음엔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 온통 눈길을 빼앗겼다가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듯한, 국내에선 좀체 보기 힘든 끝없이 곧게 뻗은 도로와 양 옆의 바다, 그리고 달리는 자동차와 내 속의 무언가를 길어 올리기 시작하는 노랫말, 나는 순식간에 고양되기 시작했다. 속도감과 시야감에 못 이겨 어쩔 줄 몰라하다 갑자기 타고 오르는 카타르시스에 냅다 으아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화 탑건 톰 크루즈가 ‘가와사키 닌자 H2R’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듯한 상쾌한 탄성이었지만 이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주체할 수 없는 감격, 서글픔, 환희, 회환, 그리움 같은 정서들이 몰려왔다. 생체에너지의 모든 RPM이 주위 산소를 다 태워버리고 동시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은 지금 당장 카카오맵 새만금 방조제 도로를 켜고 거기에 로드맵을 올려라. 그리고 유튜브 BTS의 '봄날'을 틀어봐라. 높은 볼륨으로

 

♬~~
눈꽃이 떨어져요. 더 조금씩 멀어져요.
보고싶다(보고싶다) 보고싶다(보고싶다)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널 보게될까(널 보게될까) 만나게 될까(만나게 될까) 우우우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 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



바람 부는 오후 4시경의 새만금 앞바다는 온통 윤슬로 반짝였다. 빛났다. 그야말로 출렁거렸다. 이렇게 멋진 바다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외부세계는 반대로 내가 묻어왔던 그리고 애써 태연한 척 속여왔던 내 안의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내면이 헝클어졌다. 눈물이 났고 망망하게 긴 도로와 바다는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나를 내버려 뒀다. 나중엔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고 혼자 웃음이 날 정도였다. 시선이 끝도 없이 터진 도로라 마음껏 속도를 올릴 것 같지만 이상하게 속도는 90km 인근에서 더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 욕구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로가 끝날까 봐 한 편으로 두렵고 아쉬웠다. 세상에 이런 도로가 있다니.


속으로 이 도로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약같은 도로'라 붙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수사적으로는 '슬픔이 터지도록 허락된 도로?' 왜 인지는 모르겠다. 노랫말 때문인진 몰라도 복합된 감정 속에서도 굳이 하나를 끄집어내라면 나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고를 것 같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감정의 회오리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그리고 지나갔다. 잠시 격양됐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혼자 다니며 지나치게 센티(sentimental)하게 흐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도로 중간에 쉼터가 있길래 잠시 정차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봤더니 바람소리 외에는 이 드넓은 광경의 십 분의 일도 담기지 않았다. 360˚로 카메라를 돌렸는데도 카메라 렌즈는 성냥갑마냥 좁고 답답했다. 이런 건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담기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장자도까지 차를 몰고 들어갔다, 나오는 길에 선유도에 들어 충동적으로 펜션 하나를 잡았다. 이상하게 즉흥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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