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소처럼 길게 누워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데 딸애 방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흥얼흥얼 뉴진스의 디토!
훌쩍 커버렸어 함께 한 기억처럼 널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
기다렸지 all this time~~~ ♪♬ ♬ ~ ♬
뉴진스 디토(Ditto) 노래 모르는 사람 없겠지? 정말 맑고 티 없는 노래잖아. 그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내가 어땠냐면 정말 미소가 귀에 걸릴 만큼 기분이 좋아지더라구. 얼마나 좋았냐면 '이건 내가 아빠 노릇을 꽤 잘하고 있잖아' 할 만큼 엉뚱하게 좋았어. 그 왜 뭐랄까. 내가 듣기엔 정말 딸애 노랫소리엔 스트레스 같은 건 단 1그램도 담기지 않았거든. 이해해? 하루동안 접하는 그 많은 대화와 통화, 까톡, 결재서류, 하루 과업, 식사, 잔청소, 회의, 보고, 보고... 그 많은 것들을 하다 보면 어디 하나 감정의 오염이 담기지 않은 것들이 없잖아. 그런데 기적처럼 딸애 노랫소리엔 그런 것들이라곤 전혀 묻어있지 않았어. 완전 다른 차원의 청감이었던 거야.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완전히 혼자인 것처럼 노랠 부를 수 있는 거지. 심지어 자기 자신도 지워낸 것 같았어. 애플 에어팟을 끼고 있는지는 몰라도 멜로디와 엠알, 그리고 안무가 제거된 채 들려오는 날 것 그대로 목소리와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려왔어. 그 왜 요즘 저 나이 때 아이들에게 정말 스트레스가 많잖아. 친구관계나 성적, 따돌림, 잔소리, 외모, 사춘기, 뭐 하나 그냥 방관되는 것들이 없지. 그런데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그리고 빗겨선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거야. 누구한테? 내 딸아이한테. 난 완전히 안심되더라고. 아직 나를 향해 방문을 걸어 잠근 적도 없고, 학교가길 두려워하는 모습도 없었고, 최근에는 수학 선생님이 너무 좋다며 맨날 내 앞에서 뺨을 괴거든. 난 살면서 확신 같은 건 별로 가져 본 적이 없었어. 기안 84처럼 그냥 태어난 김에 산다고 - 물론 열심히 살고 있지만 - 누구나 그렇듯 나도 그 수많은 부류 중의 하나겠거니 하며 살아왔단 말야. 그런데 사타구니나 긁어대던 그런 저녁에 저런 후크가 내 귀에 꽂힌 거야. 난 귀를 쫑긋 세웠지. 잠시 눈을 감았어. 와! 갑자기 막 행복하다는 생각이 밀려오더라구. 보통 저런 노랫소리는 작정하고 부르는 게 아니거든. 뭔가 다른 걸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거야. 그래서 더욱 좋았어. 내가 이룩한 이 공간이 저 아이에게 완전히 무해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마치 내가 뭐라도 된 느낌이었지. 정말 이런 건 흔치 않은 경험이야. 왜냐하면 이건 내가 기꺼이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란 걸 완전히 믿게 하는 몇 안 되는 순간이거든. 요즘 텃밭에 막 돋아나오는 상추잎처럼 내 마음이 연하고 부드러워졌지.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난 그걸 느꼈어. 이보다 더 완전한 순간이 있을까.
Ooh-ooh-ooh-ooh, ooh
Ooh-ooh-ooh-o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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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a-ta-ta 울린 심장(Ra-ta-t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