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100kg'는 내 로망이다. 가슴 깊은 곳의 버킷리스트로 자리 잡은 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 그 중량을 달성하진 못했다. '죽기 전 벤치 100킬로'는 그 자체로 멋진 선언적 만족감이 있다. 어쩐지 최소한 이 정도는 들어줘야 건강한 수컷의 삶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애슬릿함의 추구, 건강한 머슬에 대한 욕망은 일종의 콤플렉스에서 출발했다. 성장기에 깨닫게 된 내 골격의 빈약함, 예를 들어 친구들에 비해 한참이나 가는 손목, 종아리 둘레를 인지할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 어쩌다 앞자리 하나가 적은 숫자의 체중을 밝혀야 할 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그것을 왜 수치스럽다 생각했는진 모르겠지만 이 원초적이고 페로몬적인 육체적 우울은 오십을 다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우락부락까진 아니어도 잘 단련된 덩치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그것은 총체적 삶에 대한 완전한 만족, 그러니까 단 1g의 콤플렉스도 존재하지 않는 무결점의 영적 자유로까지 나아간다.
피지컬의 한계는 악바리 근성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과도 같았다. 난 그것을 기어올라보려 필사적으로 애써봤지만 결국 몇 발자국 못 떼고 절망의 눈사태에 파묻히기 일쑤였다. 유전적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많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으니까 나는 다른 대체재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벤치 100킬로는 그런 점에서 내게 우회적 수단의 다른 덩치이자, 중량이며, 자기만족의 셀프 위안인 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벤치 95킬로까지는 성공해 봤다. 100킬로에서 단지 5킬로가 빠진. 어찌 보면 금방 달성될 목표 같기도 한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야말로 뺨따귀 두어 대 갈겨가며 죽자 사자 짜낸 1RM이 95킬로이기 때문이다. 정말 눈알 빠지게, 이빨 부서지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조상님이 가련하게 여기시고 슬쩍 보조해 주신다면 모를까 이 5킬로를 뛰어넘을 그 무엇이 강림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건 95킬로를 들었다고 그 무게가 내 몸에 착 달라붙어 자동차의 크루즈 기능처럼 자동 입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든 그 수치는 줄어들려고 기를 쓰고 나를 갉아먹는다. 술을 먹거나, 훈련을 며칠 쉬거나, 그냥 컨디션이 안 좋거나, 잠을 못 잤거나, 며칠 풀떼기만 먹었거나 해도 언제 들었냐 싶게 95킬로는 멀어진다. 어제 분명 95킬로를 들었는데 하루도 못지나 그 자부심은 온데간데없고, 다음날은 80킬로부터 존나 버거운 것이다. 도저히 여기서 1킬로도 더 추가할 수 없을 만큼 후퇴될 때가 거의 다반사다. 내가 이 중량을 성공시킨 것도 벌써 6년 전쯤 일이다. 바꿔 말하면 난 그 지점으로부터 정확히 6년만큼 늙었다. 이쯤이면 무슨 말을 하는지 느낌이 오지 않는가.
얼마 전 검강검진에서 받아본 인바디상의 수치는 골격근이 형편없이 줄어들고 체지방만 길게 늘어난 C자형 그래프를 건네주었다. '어? 나름 운동하는 사람인데, 이러면 전부 나가린데'. 요즘 유행하는 배가 불뚝 나온 D자형 인바디 그래프를 폼나게 인증하고 싶었더만 내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내시경을 위해서 창자도 싹 비워내고, 두 볼도 홀쭉해졌는데 그게 다 근손실이고 체지방은 아무 변화가 없다고.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지금 내 몸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이럴 거면 운동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거잖아. 안 하니만 못한 거 그 오랜 시간을 뻘짓이나 한 건가. 가슴운동이고 뭐고 그냥 난 가슴을 쥐어짜고 울고 싶은 심정이 됐다.
요즘 내가 수행하는 훈련은 3*3 / 80킬로 고중량 저 반복 훈련이었다. 근력의 한 80% 정도에서 호시탐탐 100킬로 돌파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사실 몰래 고백하자면 요즘 이 80킬로도 힘에 겁나 부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업무가 바빠 운동을 게을리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지. 이 정체기를 빠르게 돌파하려면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체중 증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체중을 올리면 근력이 증가한다. 괜히 '체급이 깡패다'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 7~8킬로만 늘리면 혹시 100킬로를 돌파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체중 증가가 내겐 운동보다 더 어렵다. '세상이 온통 살들 빼느라 난리라는데 도대체 난 왜 이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남들은 그냥 타고나는 것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꼴이라니' 난 못내 억울했다. 벤치 100을 향해 가는 게 어째 남들보다 두 배 세배 노력을 더 요구하는 것 같았다. 신이 공평하지 못해서 내게 다른 무게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럴 거면 남들보다 뛰어난 단백질 소화능력이라도 베푸시지, 어째 내 담낭(쓸개)까지 떼어가셨나.
일반적으로 좋은 가슴은 둥근 모양이다. 특히 흉근 하단이 복부와 뚜렷한 경계를 이루는 것이 가슴운동의 첫 목표가 되는데 그러자면 대흉근이 충분히 발달해줘야 한다. 아직 복부와 흉근의 경계선이 만족할 만큼 분리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흉근 속에 아직 근매스들이 꽉 들어차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업계에선 보통 벤치 100 정도는 다뤄 줘야 흉근발달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본다. 그래서 벤치 100킬로를 치기 전에 쓰잘데기 없이 덤벨로 이것저것 다른 운동 기웃거리지 말고 오직 벤치프레스에만 집중하란 말을 하곤 하신다. 매스도 완성되지 않은 애송이가 무슨 세퍼레이션을 논하냔 말이다. 나는 그 말만 믿고 지금껏 죽어라 벤치만 밀어왔는데 내 가슴은 아직 매스가 충분히 들어차지 못해서 젖꼭지가 대흉근 하단 경계선에서 무려 한 2cm쯤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젖꼭지가 올라붙은 보디빌더를 본 적 있는가. 볼륨이 꽉 찬 멋진 가슴의 젖꼭지는 언제나 대흉근 맨 하단의 경계선에 붙어있다. 단순히 5킬로가 모자랄 뿐인데 벤치 100킬로는 이렇게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껏 총 3번의 도전이 있었다. 그러니까 100킬로를 세팅하고 총 세 번 깔려봤다. 그중 한 번은 올라오는 중간지점에서 한 5초 정도 부들거린 적도 있다. 이 5초가 어떤 거냐면, 재수없으면 삶과 죽음의 기로요, 운좋아봐야 세상없는 버둥버둥 쪽팔림이다. 정신적 데미지가 상당하다. 보름정도는 체육관에 근처도 못갈 수 있다. 확실히 100킬로를 세팅하면 '아! 저세상 무게구나'하는 게 확 느껴진다. 이것을 돌파하는 것이 '이번 생에서는 글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도전해 보겠다. 데드와 스콰트는 세 자리 숫자를 만들었으니 이제 벤치 하나만 남았다. 그리 큰 욕심도 아니잖나. 내가 돈을 왕창 벌어보겠다는 것도, 어디 멋진 여자와 연애한번 해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신께서도 나를 굽어살펴 주시길 바란다. 저스트 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