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라

공무원이 땅을 알아야 하는 이유 - 9편

by 긴오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누구나 미성숙하다. 미성숙하므로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로 인해 번뇌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나는 어떤 면에서 미성숙을 사랑한다. 고민하고 방황했던 미숙한 나도 역시 나의 일부이므로 어느 시점부터인가 나는 나를 향해 이불킥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고민과 고뇌를 통해 더욱 성장한다는 점이다.



업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불편한 상대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괜히 움츠러들게 되는, 위압적인 상대.
온라인 바둑이 아닌 시절에는 실재 위압감을 과시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큰 덩치를 더 크게 부풀리거나 작은 실수에도 대노하며 자책하거나 무시무시한 인상과 거친 손짓 등 불편함을 의도하는 상대들.
처음엔 그 기에 눌리거나 움츠러들어 자기 페이스를 잃기도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대는 그런 위압적인 시위 외에 어떤 위해도 나에게 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낯선 풍경에 지레 당황하는 것뿐.
상대의 흔들기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상대의 위압감에, 괜한 모욕감에 싸여 자신의 본분을 잃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바둑을 두려는 것인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인지, 일을 하려는 것인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인지,
자존심을 지키려다가는 바둑도 지고 일도 지키지 못한다.
바둑에 집중했을 때, 일에 집중했을 때 그것에 충실했던 나의 자존심, 자존감은 상처 하나 없이 지켜져 있을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는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 이런 궁리 끝 대처가 이미 나에게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윤태호 <미생> 중에서


중요한 판단을 앞두고,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우리는 겁이 나서, 혹은 그 사람이 안쓰럽거나 위압적이어서 고민하고 번뇌할 수 있다. 좋은 결과로 귀결되면 좋겠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로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너무 위축되진 말자. 당신이 그 과정에 충분히 고민하고 번뇌했다면 그 과정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것이다. 모든 순간을 마냥 후회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가 갖추어야 사명감이 있다면 처음부터 완성된 사명감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통해 갈고 닦여진 그런 연마된 사명감이야말로 진정한 사명감이라 생각한다.

욕망과 욕심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느 누구에게는 그런 사명감이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명감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한 의지」를 사랑한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루 종일 아이들을 바라보고 싶은 저 홀든 콜필드의 바보 같음을 사랑한다. 공공영역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나는 저 홀든 콜필드의 파수꾼과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공의 안전과 재산이라는 거창한 낱말을 대입한다면 여전히 미숙한 우리의 업무 역량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안쓰럽게 보이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우리의 선함과 순수함을 지켜가야 한다.

그리고 그 선함과 순수함을 바탕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안목이다.


투기가 들어왔을 때, 우리가 그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들은 온 행정을 휘젓기 시작한다. 그것은 각각의 경로로, 각각의 사람을 통해 은근히 진행되어 잘 눈에 띄진 않지만, 그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종합해보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음이 발견된다.

그것은 지구단위계획에서, 개발행위허가로, 농지와 산지전용을 거쳐, 환경영향평가와 경관심의 등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인허가 완료를 향해 은근히 나아간다. 우리가 그 각각의 부서에 모두 근무하고 있지 않은 이상,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꿰어 맞춰볼 순 없지만, 반드시 누군가 어느 지점에선 위험을 경고하고, 때론 그 위험을 Stop 하기 위해 번쩍 손을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국공유지가 포함된 인허가의 경우, 그 국공유지로 인해 암묵적으로 모든 담당자는 프리패스(Free-Pass)의 심리 상태에 놓이기 십상이다.

즉 국공유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선행된 의사결정(심의위원회)을 보통 담당자들은 신뢰하게 되는데, 이것은 "거기서 땅을 쓰기로 했대" 등의 소문으로 이미 검토가 끝난 사안이며, 그 이전에 이 결정을 내린 심의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겠냐?라는 일반화가 작동한다.

조직의 의사결정체계가 개인보다 합리적이고 검증적이겠지만, 늘 이 구조가 완벽할 순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틈이며, 이 찰나의 틈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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