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도 멋있었지만, 그 와인잔도 멋지더군요.
파리를 여행한 적 있습니다.
2012년 10월경이니까 벌써 10년 전 일입니다.
직장에서 진행된 경진대회에서 1위를 하여 4명이 짝을 이루고 떠난 배낭여행이었습니다. 6박 8일 일정의 에어텔 패키지로 파리와 로마, 그리고 밀라노를 둘러보는 코스였습니다. 국가 이름보다 도시 이름이 앞서는 생애 첫 유럽 여행에 다소 들뜨기도 하였으나, 우리는 이내 후기에 올라오는 각종 소매치기 일화에 바짝 긴장하였습니다.
이 여행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평생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우리 4명은 그 해 각각의 다른 영역에서 선발된 성적 우수자였기 때문입니다. 친분보다는 그 해 활용되지 못하면 사라지는 국외여행 포상을 소비하기 위해 맞춰진 긴급 멤버들이었습니다.
여행은 어디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답입니다. 여행 후 해단식 술자리에서 웃으며 4명 모두 동의했습니다. )
애초 여행사에서 제공한 비행기표와 숙소만 정해졌을 뿐, 나머지 관광코스는 저희들끼리 알아서 찾아다니는 세미 배낭여행이었습니다. 드골 공항에서 버스정류장을 찾는데만 1시간 30여분이 소요되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여행이 될 것임을 짐작하였습니다. 역시나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부터 난관이 많았습니다. 나름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을 사진을 통해 꼼꼼히 인쇄해왔는데 그새 가로환경이 조금 바뀌어 있었습니다. 낭패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어찌어찌 숙소를 찾아가긴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초긴장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언어였습니다. 일행 모두 고등학교 회화 수준 정도라 무언가 듣고 설명하는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일정은 파리 도착 밤부터 시작될 만큼 타이트했습니다. 겨우 짐을 풀고 우리는 세느강을 찾았습니다. 에펠탑 근처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는 티켓을 서비스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찾아가는 길에 또 2시간 넘게 소요됐습니다. 비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홀딱 젖어 포기할 때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선착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밤 9시가 조금 넘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고생스럽긴 했으나, 배에 오르니 그제야 파리의 야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만큼 에펠탑이 밝은 조명 속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파리의 야경이구나!
너 나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당시만 해도 디지털 카메라가 스마트폰 사진과 경쟁이 가능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를 포함해 제법 스마트폰 대신 디카나, 심지어 DSLR 카메라를 꺼내 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에펠탑이 시야에서 사라질까 봐 서둘러 셔터를 누르는 와중에, 그 많은 일행 중에 저는 제 눈앞에서 웬 젊은이 2명이, 그중 한 명은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와인잔 2개를 꺼내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에펠탑도 멋있었지만, 그 와인잔도 멋지더군요. 정확히는 그 애티퓨드(Attitude)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 두 남자애는 분명 미국인으로 보였습니다. 한 명이 와인잔을 배 선반 위에 올려놓자 다른 친구가 그 잔에 샴페인을 따랐습니다. 채워지는 잔을 따라 탄산 기포가 포르르 피어올랐습니다. 이슬비가 살짝 내리는 가운데 그 둘은 난간에 기대앉아 우리 앞에서 잔을 부딪혔습니다. Cheers!
(아 글을 쓰다 보니 와인잔말고 샴페인 잔이 따로 있군요. 하지만 제목을 바꾸진 않겠습니다^^)
살다 보면 참 신선한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것들은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 연출되긴 하지만 그 상황을 신선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그 주체(사람이든, 동물이든)가 지닌 어떤 힘에서 비롯됩니다. 그 주체에서 발산되는 어떤 에너지죠. '아우라'의 일종입니다. 매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떤 외모, 외향에서 찾는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릅니다. 보다 복합적이고, 또 한편으로 내적 영역의 품성, 지성, 용기 등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주는 학생이나, 화마속에서 생명을 구해나오는 소방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은 웬만해선 앞의 저런 장면은 연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그 많은 시선을 감당해낼 용기가 없고요. 또 그런 종류의 여유도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좋게 평가할 시선은 가지고 있죠. 또 더 나아가 그런 에너지를 동경하기도 합니다. 제 자신이 그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지만, 파리의 전경에 대한 감상 수준은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훨씬 더 많은 여행 경험과, 거기서 오는 일종의 완숙함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어떤 영감(Inspiration)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선 저는 낯선 이국에서 지나치게 경직되었던 몸과 정신을 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직된 자세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웃고, 떠들고, 또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각기 다른 개성과 여행관을 지닌 긴급 결성 멤버였습니다. 여행지에서 서로의 공통 교집합도 찾아야 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여행지에서 얻는 가치, 교훈, 감상 등은 순전히 각자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 역량의 눈금 실린더들이 있다면 그 게이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더불어 부족한 것을 더 채우거나, 버리거나 하는 일종의 취사선택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여행 중에 그런 것의 완급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처음 드골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갈등, 충동, 인내, 양보 등도 파리의 야경과 함께 우리의 낯선 여행을 장식하는 또 다른 내면이었던 것입니다. 그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힘,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균형감 등도 바로 앞서 얘기한 주체로서 발산하는 하나의 에너지, 즉 아우라의 일종이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저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
(그날 새벽, 저는 발자취에 대한 생각을 하다 여행 컵셉사진으로 신발을 선택했습니다. 아래사진 참조)
여행은 참 여러 면에서 긍정적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해 우리의 여행은 매우 고단하기는 했으나, 그 덕분에 저는 파리의 지리와 지하철에 대한 약간의 이해와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많이 걷고, 되돌아가고, 잘못 내리고, 헤맸던 경험에서 얻어진 결과물들이었습니다. 여행 말미엔 파리 어느 곳에 떨구어 놓아도 길은 잃지 않겠다란 자심감마저 생겼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몽마르뜨 언덕이나 콩코드광장, 개선문 등의 전경이 나오면 대략적인 지리가 떠올려질 만큼 파리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훨씬 더 깊숙이 도시를 알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이제 곧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날 것 같습니다.
저도 당장은 계획이 없습니다만, 왠지 기대가 되는군요. 자의 반 타의 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여행이니까요.
만약 제가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면, 저는 또 어떤 무언가를 배워 올수 있을까요? 과연 배움이란 것을 얻어올 수 있을까요? 거기가 어디든,
이제는 스마트폰보다 와인잔을 먼저 꺼내 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