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케이크를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아니국민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아직도 이 얘기를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마침 아버지 생신이셨는데, 멀리서 이모부 내외도 축하해주시기 위해 전날 우리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는 TV 가 한대 있었는데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리가 달리고 문이 열리는 그 옛날 TV말입니다.
이모부는 손에 들고 오신 무슨 상자 하나를 TV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동생과 저는 무슨 상자 인가해서
" 이모부 그건 뭐예요?" 물었더니
" 어. 그거 너네 아버지 선물이다"
이모부는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두 형제가 하도 궁금해서 살짝 들어보기도 하고, 무게도 가늠해보다 급기야 이리저리 흔들어보게 되었는데요. 이모부가 기겁을 하시며 개봉하기 전까지 흔들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긴긴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미역국을 한 그릇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가 끝날 즈음 드디어 상자를 개봉하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처음 보는 하얀 케이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에이. 너네가 어제 흔들어서 모양이 망가졌다"
이모부는 쯧쯧 혀를 찼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양이 조금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그날,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난생처음 먹어보는 그 버터케이크 맛에 두 형제는 눈이 동그레졌습니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또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던지 마지막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슬며시 달려 나가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돌아가며 한 손가락씩 맛보게 하며 저는 으쓱했었죠.
그리고 이후, 다시 케이크를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생일파티를 해 본 적이 없었죠. 시골 농촌지역의 정서상 파티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가족애야 물론 있었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정서적 교감에는 마냥 둔하고 쑥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뀌게 된 계기는 제가 연애를 하고부터였습니다. 사귀던 연인으로부터 은근히 표현을 강요받으면서 저도 서서히 저 오글거리는 세계에 발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급기야 지금의 아내가 이 무뚝뚝한 시댁에 새로운 가풍(家風)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강력하게 시행된 것이 바로 생일 이벤트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그 생일 케이크가 다시 밥상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신년 1월 맨 처음 아버지 케이크가, 2월엔 동생 케이크가, 4월엔 제 케이크가, 5월엔 집사람 케이크가, 그리고 9월엔 어머니 케이크가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얼마 뒤에 3월의 케이크도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둘러앉아 노래도 불렀습니다. 처음엔 촛불처럼 표정들이 흔들렸습니다만, 찍어놓은 사진과 영상 속에선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오히려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종의 연대(連帶)에 대한 확인이기 때문입니다. 한 덩어리로 굳게 뭉친 가족을 바라보는 칠순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연대는 단단하게 뭉침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늘 풀어짐에 대한 걱정이 내포되어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슨해지려는 이 연대를 꾹 꾹 다져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여러분의 배속에 풍선이 하나가 들어있다고 상상하십시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고 호흡을 걸어 잠그면 배속의 압력은 단단한 지지대가 여러분의 척추와 코어를 안정적으로 받쳐줄 것입니다.
이것을 웨이트 운동에선 '브레이싱'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행해야 할 상호 교감이나 교류들도 모두 이 브레이싱과 같은 이치입니다. 함께 모여 케이크에 붉을 밝히고, 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카메라를 향해 하트를 모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삶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어넣어진 숨은 단단한 공기 기둥이 되어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삶의 중압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격랑에 맞서 쓰러지지 않게 합니다. 우리가 당장 찾아온 위기가 없다고 이 브레이싱을 게을리하면 우리의 연대는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약해진 연대는 도미노처럼 모든 것을 차례로 무너뜨릴 것입니다.
우리에겐 모두 예정된 불행 하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불행 말입니다. 그리고 이 연대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입니다. 깊은 절망과 슬픔으로 방문을 걸어 잠그듯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의연하게 버티고 섰는 - 가령, 담담히 다음 차례의 생일 케이크에 불을 밝히고 있는 - 다른 구성원들을 발견할 때면 자신이 속해있는 이 연대가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안도와 벅참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