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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Jul 29. 2022

실명을 써도 괜찮을까?

글을 쓰면서 글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떠오르기만 한다면야 늘 고마운 일이죠.

모든 작가님들이 다 그러하시겠지만, 글이 늘어날수록 글감에 대한 목마름은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서서히 땟거리가 떨어져가면서 최근에 와서는 이런 고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글로부터 추론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끌어와도 괜찮은 걸까?



이런 고민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란 결국 직업, 특기, 전문화된 취미 등으로 귀결되니까요. 그 중에서도 이 직업에 대한 카테고리는 - 아마도 이쯤이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시겠지만- 조금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글을 써 볼까? 하다가도 멈칫 멈칫 경계되는 부분이 직장생활에 대해서입니다. 늘 좋은 방향만 볼 수 없으니 이 직장생활에 관한한 어느 정도의 부조리, 불합리 등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불쑥불쑥 드러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마다 망설이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관련 인물들입니다.



제목에야 '실명을 써도 괜찮을까?'라고 달았습니다만, 실명이 아닌 A군, B양 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당사자가 글을 본다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대번에 알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갈등은 창작의 자유를 가두는 양심의 빽빽한 그물코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저같은 INTJ 인간형들은 내성적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혼자 계속 인간을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 그래서 '눈치가 매우 빠르다'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런데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반대로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글에 남과 관련된 이야기를 차용해 쓰는 것은 좀처럼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직업에 대한 글을 꽤 썼더군요^^ 저는 INTJ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건지 /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런 고민이 계속되던 와중, 저는 마전 넷플릭스 <건지 / 감자껍질파이북클럽>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의 리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제2차세계대전을 겪은 영국의 외딴 섬 건지 마을 사람들의 전후 상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줄리엣은 마을 사람들이 겪은 전쟁의 상실을 알게 된 후, 그 아픔에 공감하며 책을 출판하지 않겠다란 약속을 하였지만 작가로서의 본능에 괴로워합니다.

아래는 편집장?인 그녀 오빠와 나누는 대화 중의 한 대목입니다.


"그들 이야기를 쓰자"

"못해요. 약속했으니까요"

"줄리엣, 그건 알겠지만 이건 네 이야기야. 속으로 삭힐 수만은 없어"


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건 네 이야기야'입니다. 물론 제가 고민에 대한 답을 갈구하다 편향적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론으로 돌아와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저의 이야기이기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영화와는 달리 이야기 속의 당사자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조심해야 할 건 제가 불필요한 과장이나 왜곡을 보태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그래도 저는 현재로서는 가급적 실명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거나, 원망이 싹트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돌아보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부캐'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제가 아닌 별도의 존재로서 가상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말입니다. 작가명을 실명으로 적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이유로 별도의 필명을 따로 만들었죠. 필명을 따로 만드시는 작가분들 대부분이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별도의 캐릭터는 가급적 현실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습니다. 글감이 줄어드는 지금에 와서는 조금씩 현실의 세계로 손을 내밀고 있지만요. 

과연 언제까지 저는 자신을 숨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벌써 실명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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