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Oct 11. 2017

미안해의 모순

'미안해'와 '미안해' 사이 1


 ( 어금니아빠, 부산 중학생 사건 등 가해자들이 오히려 떳떳하고 잘사는 세상을 보고 현기증을 느껴 이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어조가 다소 딱딱할 수 있으나 큰 잘못을 하고도 딱히 미안해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은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제목 끝에 '1'이 달려있는 까닭은 '미안해'의 종류에 대해 나누려 한 것입니다. 2,3편에서는 다른 내용의 '미안해'를 들고 올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번 편의 내용이 제가 말하려는 '사과의 모순'의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고, 이 글을 읽어주세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맨 윗줄에 적었듯이 최근 사건사고 중 가해자들이 떳떳해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풀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어쩜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또 미안하다는 말은 얼마나 쉽게 쓰이는지.


나는 가끔 '미안해'라는 사과가 참 가볍다고 생각한다.

어떤 실수를 해도,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더라도 상관없이 '미안해'라는 말 한 마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치 '미안해'의 사과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사과의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론 '미안해'가 모든 것을 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때론 모든 것을 다 담아 그 어떤 말보다 묵직할 때도 있다.

이 편에선 미안해하는 마음이 없이 쉽게 뱉고 상황을 무마하려고만 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적어보겠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늘 진심이 담겨있어야 한다.

상황을 무마하듯 대충 뱉어낸 말이 아닌 천천히 빚어내듯 눈을 마주치며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이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네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다고 마음을 보듬듯 천천히, 따뜻하게 말을 빚어야 한다.



간단하고 명료한 3음절의 단어, '미안해.'


26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미안해'를 경험했다.

그 주체는 내가 되기도 했고, 상대방이 되기도 했으며 때론 내가 전혀 관계없는 제삼자로서 우연히 관찰하기도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단순히 상황을 넘기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과를 몇 번 하다 상대방이 반응이 없으면 오히려 화를 낸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나도 할 만큼 했어. 더 이상 뭘 해야 돼?"


그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사람을 죽여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웃으며 대해야 한다.

누군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죽여도,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하며 웃으며 받아야 한다.


사과 한 마디에 자신의 실수와 잘못이 모두 용인될 수 있는 걸까?


때론 미안하다는 말에도 앙금이 남는 상처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 이상 상처가 계속 남아있다.

이별의 가장 좋은 치유제는 새로운 사랑으로 덮어내는 것이다.

이 사랑이 그 사랑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대체는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말을 뱉고 쉽게 후회한다.

그리고 쉽게 그 상황을 돌리려 한다.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내가 잘 몰랐어, 요즘 피곤해서 그랬어.


그런데 하나같이 말들마다 핑계가 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 잘 몰랐다, 피곤했다' 그러니까 너도 이해해야 해.

결국엔 그 상황을 '그럴 수도 있는 상황'으로 대체하려 한다.

누구나 실수 한 번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이제 안 그러겠다고.


사과로 모두 끝낼 수는 없다.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과 부딪혔는데 그 사람의 핸드폰이 떨어지면서 액정이 나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안해요." 한 마디만 듣고도 화를 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럴 땐 액정을 새로 바꿀 돈을 주며 사과를 해야 한다.

어떤 행동에 대해 실수를 했으면 그 상황을 어떻게 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꼭 보상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정말 미안하기 때문에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 한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볼까.

A는 굉장히 기분이 우울했다.

그래서 바닷가에 앉아 바다 쪽으로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렇게 물이 퐁당퐁당 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런데 A가 던진 돌에 어린아이가 맞은 것이다.

아이의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겼고, 피가 흘렀다.

그때 아이 엄마가 A에게 화를 냈다.


A - 어머 정말 죄송해요 돌에 아이가 맞을 줄은 몰랐어요. 아이를 못 봤어요.

아이 엄마 - 아니 미안하다고 하면 다예요? 이거 흉 지겠구먼. 여자 애 얼굴에 이게 뭐예요 도대체.

A - 죄송합니다.

아이 엄마 - 아니 말로만 하면 다 되는 거냐고요.

A -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너무 우울한 상황이라 그랬어요. 제 상황도 좀 이해해주세요.


이 대화를 한 번 생각해보자.

A는 자기 입장에서만 대화를 이끌어간다. 적어도 아이 상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과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눈을 보고 진심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사과를 하며 이해받기를 바란다. 내가 보지 못해서, 우울한 상황이라 이해해달란다. 아이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다면 내 상황을 이해해달라하기 보다는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아이의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사과를 하는 게 맞다. "많이 아프지? 미안해. 흉 지면 안 될텐데. 정말 속상하다. 많이 미안해." 적어도 이런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대의 상황에 대한 공감이 없이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과 자기 상황만 설명하니 상황을 넘기려는 인상만 남기게 된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부분에 대한 정신적 보상과 아이의 얼굴 흉터에 대한 치료비를 제공하며 사과를 해야 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의 마음속 상처는 더 클 것이다. 심하면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평생 바다 근처에는 안 갈지도 모른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당신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 아가인데 갑자기 큰 돌에 맞아 얼굴에서 피가 난다. 얼마나 무섭겠는가. 바닷가도, 돌도. 그러므로 아이가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당신이 우울한 상황이고, 아이를 못 봤고는 '당신의 핑계'일뿐이다. 피해자가 생긴 마당에 당신의 핑계까지 이해해줄 여유는 없다. 아이 얼굴엔 피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아이 엄마가 그것을 요구했을 때 무슨 정신적 보상까지 해줘야 하냐며 화를 낸다면 당신은 정말 큰 실수한 거다.

 몸에 생긴 상처보다 마음에 생긴 상처가 더 아프다. 치료도 더 힘들뿐더러 삶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럴 땐 진심으로 사과하며 원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맞다. 만약 정말 아이가 바다와 돌에 트라우마가 생겨 평생 바닷가에 가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모두 질 수 있는가? 평생 바다를 못 간다는 건 엄청난 희생이다. 그 아이는 나중에 성장을 해서도 할 수 있는 활동과 즐길 수 있는 '휴가'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과를 할 때는 그 사람의 상황과 마음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해야 한다. 사과의 의미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과의 마무리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정하는 것이다. '할 만큼 했다.'는 내 입에서 나올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과를 할 만큼 했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 상처가 모두 가라앉을 때 상대방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 정말 미안하다면, 사과를 하고 싶다면 기억하자. 상황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항상 우리는 제삼자였을 때, 피해자일 때, 가해자일 때 모두 입장이 다르다. 그리고 가해자, 제삼자일 때 가장 쿨해진다. 막상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그렇게 쿨하진 못할 텐데 말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이해가 안 될 수는 있다. 공감도 안 되겠지만, 한 발 물러서서 마음을 비우고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자. 왜 힘들어하는지, 왜 화를 내는지. 들어보면 분명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다. 마음을 비우면 다시 채워지는 법이다. '미안해'의 모순.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시 보상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선 아무리 사과를 해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건이야 새로 사서 주면 된다.

그런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면? 혹은 한정판 물건을 깨버렸다면? 혹은 몸에 큰 상처를 입혔다면? 혹은 정말 소중한 자료가 들어있는 usb를 잃어버렸다면?


몸에 준 상처에 대해 단순히 치료비만 주면 회복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몸에 상처를 받는 순간 마음에도 상처를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제대로 된 보상, 사과 방법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자기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번 되짚어보자.

정말 사과를 할 만큼 했는지, 그 사과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는지를 말이다.


사과의 방법에 대한 생각이 나와 상대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럴 땐 최대한 내 마음이 느껴지도록 편지를 써보거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서라도 잘 전달해야 한다.

상대의 지나친 요구는 피해야겠지만, 그 요구가 지나쳤는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피하려 하지 말고 끝까지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는 두 눈을 마주보며 표정과 눈빛의 교감으로 먼저 느끼도록 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에 입힌 상처를 과연 치유해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이

진짜 사과의 출발선이다.


모든 사과엔 진심이 어려있어야 한다.

3음절의 '미안해'가 차마 담지 못한 진심을 끝까지 보여줘야 한다.


천천히 도자기를 빚어내듯 '미안해'를 빚어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신중히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3음절의 미안해에도 꽤 무거운 무게가 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을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