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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Feb 08. 2019

나는 과연 그를 잘 아는 걸까?

한 사람을 알기까지 걸리는 시간 


몇 년 간 친구로 지냈던 사람이었다.

성별은 달랐지만, 통하는 부분이 많아 취미생활도 공유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불현듯 그가 고백을 했다.


처음엔 친구로만 생각했던 그의 고백이 부담되어서 답을 보류했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했다.

그 도중에도 그는 나에게 진심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편지를 써서 줬고, 중간중간 에너지 음료를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친구 같기만 했던 그가 어느새 듬직하게 느껴졌다.


몇 년의 시간 동안 그를 지켜봤을 때 그는 책임감도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단지 친구여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와 교제를 하게 되었다.

그는 친구로 지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늘 나의 의사를 존중했으며,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조차도 맛은 어떤지, 입에 잘 맞는지 물어봤다.

그의 질문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 나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구나.


교제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밥을 먹는데 뜬금없이 그가 핸드폰을 뒤집었다.


평소 그의 핸드폰에 무관심했지만, 그날만큼은 느낌이 이상했다.


"갑자기 왜 뒤집어?"


내가 묻자 어머니에게 영상전화가 와서 뒤집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가 페이스톡을 걸었다.


"아들이 직장 다닌다고 서울에 올라와서 사니까 걱정되셔서 자주 하시는 편이야."


그가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던 중 또 한 번 그가 핸드폰을 뒤집었다.


"또 하셨어?"


"아니 그냥."


"핸드폰 봐도 돼?"


"어? 아무것도 없는데 안돼."


그는 핸드폰을 황급히 주머니에 숨겼다.


"어제 동생이랑 동생 친구랑 밥 먹었다고 했지?"


"응 동생 친구가 갑자기 와서 저녁 먹었어."


"아 그래. 핸드폰 보면 왜 안돼? 뭐 있어? 네가 갑자기 숨겨서 기분이 안 좋아.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 밥 먹는 중에 내가 갑자기 핸드폰을 뒤집었어. 그리고 절대 보여줄 수 없대. 넌 어떨 거 같아?"


"기분 나쁠 거 같아."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간단하지. 나도 이런 거 보는 거 안 좋아해. 근데 난 속이면서 이어지는 관계는 싫거든."


그는 내 말에 수긍했는지 핸드폰을 건네줬다.


그는 어제 친동생과 친동생의 친구와 함께 클럽에 갔다.


그 : 2층으로 올라와라.

동생 친구 : 1층에서 여자랑 꼬비하는 중 ㅋㅋㅋ

그 : ㅋㅋㅋㅋㅋ

동생 친구 : 여자랑 잠깐 밖에 나옴 ㅋㅋ

그 : 너 곁에 여자들 너무 많아서 못 가겠다. 의자왕이네 ㅇㅇ이 의자왕~



단체 톡방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고, 시간은 새벽 3시경이었다.


"어제 혹시 클럽 갔어?"


"아니 그냥 밥 먹고 술집 가서 술만 먹었어."


"그럼 이 내용은 뭐야?"


"아 그냥 술집 갔는데 걔가 맘에 드는 여자 있다 해서 같이 술 마셨어."


"그럼 헌팅 술집 간 거야?"


"아니 그냥 술집."


"그럼 1층, 2층, 꼬비 이 내용들은 뭐야?"


"아 그건 그냥 장난친 거지."


"난 거짓말하는 거 싫어해. 솔직하게 말해줘."


"아 솔직하게 걔가 어제 클럽가자 해서 3차로 클럽 갔어."


"왜 거짓말했어?"


"네가 싫어할까 봐."


"우리 생각 좀 해보자. 난 내가 싫어하는 행동 안 하는 사람이 좋아. 하고 말 안 하는 사람 말고."



뒤에서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빠르게 걸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믿었는데, 믿었는데.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친구로 지켜봤을 때 듬직하고 성실했던 사람.

그땐 그의 사생활을 몰라서였을까, 몇 년을 좋은 친구로 지낸 사람이었는데 연인으로는 채 한 달을 지냈다.


끝까지 거짓말을 하려 했던 그에게 실망했다.

나는 과연 그를 잘 알았던 걸까?

그와 친한 친구였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못할 것 같았다.

친한 친구라 해서 상대의 모든 것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그가 숨기려 하던 것들에 늘 속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만 믿으며 그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의 진심, 사생활이 어떤지도 모른 채.


그의 다른 카톡방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신기하게도 욕이 아니라 오로지 칭찬과 관심에 관한 이야기들.


한 친구가 약속 장소에 늦을 것 같다고 하자 

그가 지연이가 보고 싶어서 지연되네요~ 지연됐어요, 했다.


또 다른 카톡방에서는 한 친구에게 나와의 데이트 코스를 상의하며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방에서는 나에게 나는 향수 냄새가 좋다는 이야기,

지연이랑 데이트해야 돼서 너희랑 만날 시간 없다는 이야기 등.



이렇게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럽이야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싫었다.


나는 과연 주변 사람들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평생을 다 걸어도 누군가를 잘 안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다른 면을 발견했을 때 너무 실망할까 봐.

차라리 잘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나는 비트윈 연결을 끊었다. 

그에게 사과 카톡이 왔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미안했다. 

그를 잘 몰라서.


마치 다 알아버린 것처럼 그에 대한 좋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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