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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Mar 04. 2017

연락에 관한 마음의 척도 1

카톡 1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배터리가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가 폰을 충전해놓고 씻고 나와 폰을 켰다.


그때 썸을 타던 남자로부터의 연락이 세 개 와있었고,

마지막 메시지는 '애초 나는 이 정도였던 거지.'였다.


순간 놀라 카톡방에 들어가 보니 영화를 본 이후부터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게

썸남으로부터 오해를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오해를 풀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봤을 뿐이고, 배터리가 없었을 뿐인데

고작 몇 시간으로 내 마음을 의심하는 사람과는 어차피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


단지 썸일 뿐이었는데 단 몇 시간의 연락에

'바쁜가?' 가 아닌 '애초 나에 대한 마음이 이 정도였겠지.' 하고 과대망상을 하는 사람과는

어차피 오래 만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컸기에

몇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을 수는 있다.


뭐지? 내가 실수한 게 있나?

마음이 떠났나?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사랑에 대한 걱정도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상대로부터 '나에 대한 믿음이 없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핸드폰을 하루 종일 붙잡고 살 수는 없다.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씻을 수도 있고,

수영을 할 수도 있고,

헬스를 할 수도 있고,

요리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카톡에 1이라는 숫자는 왜 만들어서

관계에 오해를 쌓이게 하는 걸까?


단 몇 분, 몇 시간만 읽지 않아도

상대의 상황이 어떤지 헤아리기보다는 자기에 대한 마음이 그 정도였다고

억측하는 관계들이 너무 피곤해졌다.


혹여나 바쁘게 지내다가 늦게 핸드폰을 봤을 때

다른 사람들도 나의 마음을 오해하진 않을까

일일이 '밥 먹고, 뭐하고 뭐하다 보니 핸드폰을 지금 봤어. 진짜야.' 하고 설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마치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기분이 들었다.


몇 분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 의심할 관계라면

애초 믿음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꼭 옆에 붙어있어야만 안심이 되고,

바로바로 연락이 와야만 사랑이 느껴지는 건

어린애들의 연애다.


답이 바로 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밀당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조금 우습다.


어쩌다 삶의 중심이 핸드폰이 되었는지 애잔하기도 하다.

성인이라면 각자의 생활을 하다가 시간 될 때, 틈틈이 연락을 하며

자기 생활 위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법.


핸드폰과 연락을 1순위로 정해두고,

일도, 운동도, 취미도 제대로 못한 채 생활한다면

삶이 생산적이지 못하다.


1에 집착을 끊고

자신의 삶을 살자.


바쁘게 나만의 취미를 갖고

여가를 즐기다 보면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중요한 관계들이 곁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고작 몇 분, 몇 시간 늦게 보냈다 하여

멀어질 관계였다면 애초 그 정도 관계였다.


각자의 시간과 상황을 존중하는 생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게 각자 생산적인 시간을 갖고, 바쁘게 지내다 보면

추후 연락을 하거나 만나서 대화를 할 때 얼마나 주고받을 대화가 많겠는가.

얼마나 관계가 풍요로워지겠는가.


관계는 사람을 더 발전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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