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5
타자인 아버지의 욕망을 욕망하다보니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해당 전공이 지원희망 1순위는 아니었다. 나의 1순위는 심리학과였다. 직관적으로 나는 로봇이나 AI가 인간 종을 뛰어넘는 순간이 오기까지 인간의 관념 혹은 정신적인 것이 세상을 관통하는 원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마음이 결정하는 것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1학년이 되고 전공의 기초가 되는 경제원론을 수강할 때 나는 오만했다. 교수님께서 칠판에 직교좌표계를 그린 뒤 크게 X자를 그리시면서 경제학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수요 공급 곡선에 대해서 소개할 때 공부를 얕보기 시작했다. ‘까짓 꺼 맥주 마시고 싶어서 한 캔 산다고 생각하면 되네. 이것도 그냥 마음이 결정한다는 이야기네’ 쉬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는 듯한 경제원론 수업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날 이후로 수업은 안 듣고 술 마시고 온라인 게임하는 나날로 접어들었다. 아! 내가 학부를 11년 다닐 줄 이때 알았더라면 함부로 X자를 깔보진 않았을텐데.
공짜로 나누어주는 학점인 B와 C 그리고 F로 성적표를 가득 채우고 머리를 텅텅 비운 채로 군대에 다녀온 뒤에 복학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다짐을 하고 경제학 수업을 수강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에서 발생했다. 시험지가 수학 문제로 도배된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말로 풀 수 있는 예시와 이론을 들어 설명하시던 교수님은 글로 서술하는 문제 대신에 계산문제로 시험을 대체하셨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청년은 그날 울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 실의에 빠진 나에게 지도교수님은 이렇게 조언하셨다. 마치 예언자의 신탁처럼 알쏭달쏭한 그의 조언을 새겨 듣고 그날부터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감정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친구와 대화하다가도 “그래서 그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데? 그래야 개선하지.”라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사실 정말 감정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것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궁지에 몰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만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정은 회계 수업 중에 탄생했다. 가축과 같은 생물 자산을 다루는 부분에서 모든 것을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출산도 아이를 공급하는 거잖아. 그러면 남자인 나는 뭐지? 수요자인가?’
그렇다. 갈릴레오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깨달았듯이 나는 생산하고 공급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비하고 수요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받고 싶고 즐기고 싶고 갖고싶기만 했던 욕망의 결정체가 나였다. 나의 전공이 다시 보였다. 경영학은 공급자이자 생산자의 학문이었던 것이다. 제품을 만들고 파는 회사의 학문, 비유컨대 출산에 있어 남자가 아닌 여성의 역할을 연구하는 학문.
심리학과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11년이 걸려 졸업을 할 때가 되서야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것은 마음이 결정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부연설명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 중에서도, ‘주고 싶은 마음, 베풀고 싶은 마음’이 결정한다. 갖고 싶은 마음은 무한하지만 줄 수 있는 여력은 유한하다. 그래서 우리는 비용을 계산한다. 시구가 기억난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