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작문6

by sinewave

담배를 끊은지 1년이 넘었다. 음주가 흡연보다 사회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습관을 바꿨다. 점점 상황이 바뀌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몇 년간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신다고 알리고 술약속을 잡기 시작한지 1년째가 되자 지인들과의 교류가 잦아졌다. 생일인 그날도 그렇게 이태원에 갔다. 신나게 놀았다.


새벽 3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중이었던 노르웨이에서 여행 온 20살 여자들에게 친구가 말을 걸었다. 술자리가 이어졌다. K푸드와 엔터테인먼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때 느꼈다. 여자애들 3명과 감자탕 식당에 갔다. 김치가 맛있다며 김치를 열심히 먹고, 감자탕에 라면사리를 넣어서 먹고, 막국수에 소주를 마신다. 얘들은 북유럽 고향 소개도 하고 반려동물 사진도 보여준다. 영어와 미국문화를 매개로 이국의 그녀들과 우정을 쌓았다. 해가 쨍쨍할때까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코가 큰 서양인들을 대할때면 어쩐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날 풋풋한 노르웨이 여자애들은 내가 착각에 빠지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참 친절했다. 우린 피부색도, 머리카락 색도, 눈색깔도 다른 매우 다른 얼굴을 가졌지만 그 애들과 있는 동안 어쩐지 나도 처음 대학교 동기 여자애들과 놀러 갔을 때 기억이 났다. 신나게 웃었다. 콤플렉스가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해외에서 산 적도, 여행을 간 적도 없다.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지만 내 생활반경을 고려할 때 나는 동질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만들어졌다. 획일적인 기준에 근거한 가상공간의 외모비하에 약해졌다. 외국인과 외국어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생겨났었다. 그런 내게 주어진 몇 시간의 서양 사람들과의 문화교류는 이질성이라는 면역주사와 같은 효과를 냈다. 그녀들에게 느꼈던 나의 감정은 파격적이었고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다양성을 장려하는 문화 속에서 그들의 얼굴처럼 내 얼굴은 또 하나의 색다른 얼굴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 얼굴이 매력적일지 모른다는 가정은 얼마나 고무적인가.


“(영어로)함께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히 추억할거예요. 한국에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하자 “내가요. 우리가요”라면서 연신 공손하게 인사하는 그녀들. 친구는 아쉽댄다. 뭐가 아쉬운지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가는 아침버스에서 바라본 원효대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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