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논술19

by sinewave

우리사회는 차별금지법을 외면해왔다. 능력과 처지등에 따라 합리적으로 차등을 둬왔지만 불합리한 차별이 잘못이고 제도적으로 이를 예방, 금지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먹고사니즘을 앞세워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뒷짐져온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선진국들은 차별금지법을 오랜 기간 발전시키며 이미 논쟁과 오해를 해소해왔다. 오래 전 법을 도입하여 제도적 정비와 사회적 합의를 병행해 왔다. 처음부터 완전한 합의 속에 법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법의 시행을 통해 오히려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고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아왔다. 이를 통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구축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 뿐만이 아니라 다수자 역시 정의롭고 투명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돕는 제도적 안전망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감안할 수 있게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를 도입해야 함에는 틀림없다. 차별에 대한 인식은 문화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어왔다. 한국 사회는 유교적 위계질서와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성적지향, 젠더 정체성, 이주민, 종교 등과 관련한 갈등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따라서 법 제정 과정에서 국민의 우려를 단순히 혐오나 무지로만 치부하지 말고 충분한 공론화와 조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일부의 반대를 이유로 입법을 무기한 미루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더 키울 수 있다. 제도는 완전한 사회의 모습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진 않았기에 경제법안 뒷전으로 밀려야 한다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경제법안 뒤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자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비용처럼 여기는 태도다. 인간의 존엄은 호황기와 불황기를 가려가며 보장받아야 할 사안이 아니다. 위기일수록 사회적 약자는 더 큰 고통을 겪고 차별은 더 뚜렷하다. 경제가 중요한 만큼 그 경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 보장은 더욱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선진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노동시장 내 공정성 강화, 인적 자원의 다양성 확대, 소비자 신뢰 형성 등 긍정적 파급효과를 통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사람을 존중해야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인권 담론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글로벌 시대에 포용적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의 동아줄이기도 하다. 미뤄야 할 후순위가 아니라 지금 이때 응답해야 할 시급한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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