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2
서른 한살까지 졸업과 취업을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11년동안 자리잡지 못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다. 같은 해 입학한 동기들은 저마다 회사의 대리급으로 진급하거나, 시험에 합격해 밥과 술을 산다. 얻어먹기만 하는 나는 집에 와서 ‘내가 거지도 아닌데 밥 얻어먹는 게 불편해’라고 투덜거린다.
매일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는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아팠었기 때문에 걷는 것부터 시작했던 게 벌써 1년이 넘어섰다. 동네 한바퀴 1km에서 시작했던 게 늘어서 요즘은 영등포, 여의도 한바닥 10km를 걷는다. 체력이 부쩍 늘었다. 거대 해졌던 몸도 덜 비만 해졌다. 같은 동네, 비슷한 경로를 따라 걸으면서, 몸과 마음은 다시 단단 해졌다. 쌓인 물이 바위를 뚫듯이 산책 한바퀴 돌때마다 고통과 불안을 이겨 나갔다. 성장하고 강해졌다.
아픈 동안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괴롭게 만들었다. 도대체 ‘허비’라는 단어와 단어가 주는 느낌을 인생에다 갖다 대게 하는 습관의 출처는 어디냐. 나는 효율적인 기계가 아니란 말이다. 왜 수확의 풍족함, 공장의 생산성 척도가 감정적 결핍의 근거가 되는지.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톱니바퀴에 빨려 들어가는 현대인간의 모습은 진짜다. 나는 효율적으로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존재로 전락하고야 말았다고 낙담하기도 했다.
그건 착각이다. 왜 졸업과 취직이라는 결과만 보고 과정은 보지 못하나. 나는 질병의 사회성을 배웠다. 누구든지 노동시장에서 탈락해 약자가 될 수 있다. 건장한 남성도 예외가 없다. 몸으로 느꼈다. 둘째로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념이 바뀌었다. 경쟁사회에서 뒤쳐져서 포기한게 아니다. 경쟁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경쟁력을 갖추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뿐만이랴. 성인이 되고 나서 부모와 깊이 동거할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날 정성껏 보살폈고 나도 그들을 보살폈다. 가족은 더 긴밀 해졌다.
나는 길에서 산책을 한다. 우리는 끝없는 길을 간다. 어떤 이유에서 머물기도 하지만, 이내 떠나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서. 길 위에서 웃고, 길 위에서 운다.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 유는 삶이다. 삶은 길이다. 나쁜 길도 길이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어.’ 산책을 함께 하는 먼저 간 사람의 말씀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