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25 일
신앙을 내면화하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는 나는 죄인이라는 말씀이었다. 그것은 실제 내가 저지른 세속의 비행사실과 전과와는 다르게 모두에게 따라다니는 도덕적 결벽증이나 양심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가리키는 걸까? 도덕적 결벽증과 양심은 왜 생길까? 자연선택의 메커니즘 때문에? 종으로부터 도태되리라는 생각 때문에?
역사는 선사부터 고대의 신화에서 중세의 종교신학, 근대의 철학과 현대의 과학을 거치고 있다고 한다. 순서대로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우주의 정복자로 우뚝 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선사는 진화의 세계다. 원초적 본능을 가진 생물의 세계다. 진화의 끝에서 인간은 재생산을 위한 자연선택을 멈췄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 덕분에 진화를 초월한 사랑을 한다. 그리고 세대를 잇는다. 인류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순간부터 진화의 시뮬레이션 바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진화의 시뮬레이션(자연) 바깥에는 신이 존재한다. 섭리란 시스템의 알고리즘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자연에서부터 발생한 창조주라는 아이디어를 창조한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했다.
현대 기술문명의 리더 중 한 명인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신에게 물어볼 질문으로 이것을 제시했다. “이 시뮬레이션 바깥에는 뭐가 있나요?.” 같은 논리라면 우리도 우리가 창조한 AI와 로보틱스가 결합해 기계문명이 인류를 초월할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최후에 우리의 인식세계에 도달했을 때 AI로보틱스 빅스비시리(가칭)는 똑같이 물어볼 것이다. “너희들이 만든 코드 밖의 세계는 무엇이지?” 하지만 이것은 사실 오싹한 유추다. 기계가 발생초기 상상하지 못했던 절대자란 겨우 나정도의 존재에 불과했다는 비유는 우리의 하나님이 하나님 상위의 존재가 보기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절대자에 빈약함에 관한 원초적 두려움의 감정적 차원에서 보건대 나는 AI로보틱스의 특이점에 빗댄 창조주에 관한 빈곤한 상상력을 벗어나야 한다. 신은 성기나 지폐 같은 물리적 유형이 아니다. 차라리 자연선택이나 금융시스템과 같은 무형이라는 편이 낫다. 또한 신은 개별자의 형상에 깃든 보편적 본질이다. 왜냐면 신은 물리적 실체에 관한 인간의 뇌의 전기적 정보처리 작용이 처리하는 추상적 아이디어일때 우주를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화의 시작과 끝에 있는 신은 물리적 실체에 대한 감정인 동시에 우리가 느끼고 알아가는 방식을 넘어서는 어떤 미지의 존재다. 이 두가지 선택지는 역방향의 결론과 순방향의 결론이다.
나의 결론은 원죄란 하나님과 나를 잇는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이 아이디어란 시뮬레이션으로부터 비롯됐지만 시뮬레이션을 초월한 생각이다. 창조주가 만든 섭리에 관한 추정이다. 사랑은 대표적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