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동엽 시인을 좋아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한참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을 무렵 시사성이 짙은 <껍데기는 가라>를 처음 접하고 그의 언어와 감수성에 반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제 고향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백마강 기슭에 있는 그의 시비에도 여러 번 찾아가곤 했었습니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화사한 그의 꽃/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로 시작하는 서정시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지막이 읊조리다 보면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니 산에 언덕에 많은 영혼이 꽃으로 피어났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무슨 꽃으로 피어났을까요? 그의 시집을 읽던 어느 날 나는 신동엽 시인의 진수를 알 수 있는 시를 찾고서는 거의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신동엽 시비에 새겨진 <산에 언덕에>
톡 톡
두드려보았다.
숲속에서
자라난 꽃대가리.
맑은 아침
오래도
마셨으리.
비단 자락 밑에
살 냄새야,
톡 톡
투드리면
먼 상고까장 울린다.
춤추던 사람이여
토장국 냄새.
이슬 먹은 세월이여
보리타작 소리.
톡 톡
투드려 보았다.
삼한 적
맑은 대가리.
산 가시내
사랑, 다
보았으리.
- 신동엽, <원추리> 전문
신동엽의 시 <원추리>에는 역사의식이 담겨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원추리는 우리 역사를 담고 있는 꽃입니다. 저는 역사의식도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 시를 통해 그의 언어 감각을 먼저 보게 됩니다. 원추리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가서 톡톡 두드리면 금방이라도 꽃망울이 터져 개화할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나요? 신동엽은 원추리꽃이 피려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꽃봉오리를 톡톡 ‘두드리는’ 것을 넘어서 ‘투드리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질 않나요! 놀랍습니다. 이제 여기서 저는 혼절하고 맙니다. 그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언어 감각에서 꽃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서는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정말로 원추리 꽃봉오리는 ‘두드리면’ 안 열릴 것 같고, ‘투드리면’ 금방 꽃잎이 활짝 열릴 것 같은 충격을 고백하고야 맙니다.
내 사촌누나는
포탄보다 가난으로 쓰러졌다
가난이 전쟁보다 무서운 때
우리는 뒷산에 올라가
원추리를 꺾으며 허기를 달랬다
어려서 식민지가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가난을 부끄러워하던 사촌누나랑
산에서 칡뿌리로 목을 축일 때
그때부터원추리는
누나의 혼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식민지도 끝이 나서
통일만 남은 허리 아픈 동산에 올라가
사촌누나의 무덤가에 핀 원추리를 본다
베적삼에 검은 치마를 입었던
사촌누나의 가는 키가
원추리로 살고 있다
봄에는 찔레를 꺾어
허기를 달래주고
여름에는 꽃뭉치 틀어주던
그 누나가
지금은 배고픔을 잊었겠지만
아직도 흐느끼는 소리가
원추리 꽃을 맴돌고 있다
- 이생진, <원추리꽃> 전문
제가 좋아하는 또 한 분의 시인이 등장하는군요.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입니다. <성산포에서>는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이 구절을 읽고 정말 저는 이 시인한테 단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완행열차를 타고 새벽에 목포에 도착하여 뒤뚱거리는 작은 배 밑바닥에서 온갖 토악질을 해대며 장장 8시간을 넘게 걸려 밤에 도착한 제주도, 1980년대 초 그 당시엔 정말 이렇게 어렵게 제주에 갔습니다. 성산포의 이국적인 매력에 빠져 돌아왔을 때 눈에 들어온 시인이 바로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이었습니다.
이생진 시인도 원추리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역시 전쟁과 같은 역사문제와 결부된 시지만 서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군요. 한국전쟁 때 가난으로 인해 죽은 사촌누나 무덤가에 피어난 원추리꽃, 궁핍한 시절 가난을 상징하고 가난으로 인한 허기를 채워주던 꽃, 그렇습니다. 원추리꽃은 누나의 혼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며 그렇기에 원추리꽃은 누나의 꽃입니다. 원추리는 가난한 어린 시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나물로 먹었던 풀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원추리 어린줄기를 잘라 원추리나물을 해 주셨습니다. 원추리는 먹을 것이 부족하던 어린 시절 고향의 꽃입니다.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저의 공간이었던 뒷들 장독대 옆에 피어있던 노란 원추리꽃은 추억의 꽃이기도 합니다.
스텔라원추리
[4절] 마루 끝 판장문 앞의 무궁화 지는 햇살에 더욱 소담하고
원추리 꽃밭에 실잠자리 저녁 바람에 날개 하늘거리고
음~텃밭에 꼬부라진 오이 가지, 밭고랑 일어서는 어머니
지금 퀴퀴한 헛간에 호미 던지고 어머니는 손을 씻으실 게야
에헤 에헤야, 수제비도 좋아라
에헤 에헤야, 내 고향 집 가세
(중략)
[후렴]에헤 에헤야, 어머니 계신 곳
에헤 에헤야, 내 고향 집 가세
에헤 에헤야, 어머니 계신 곳
에헤 에헤야, 고향 집 가세
- 정태춘 작사·작곡, <고향집 가세> 부분, 1988
<고향집 가세>가 실린 1988년 정태춘 박은옥 앨범
정태춘이 작사 작곡해서 박은옥과 함께 부른 <고향집 가세>의 일부입니다. 이 곡에서 해바라기 울타리, 장독대 사이 난장이 채송화, 담 그늘의 호랭이꽃(나리꽃), 술 항아리에 담던 들국화, 쓰러지는 울타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세미, 마루 끝 판정문 앞의 무궁화, 처자들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꽃과 같은 고향을 떠올리는 여러 가지의 꽃들이 등장합니다. 이 노래 4절에는 원추리꽃밭에 실잠자리가 등장합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꽃들은 모두 고향과 어머니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원추리꽃도 어머니의 꽃이 되고 어머니가 계신 고향의 꽃이 됩니다. 원추리꽃은 향토적 정서를 대변하는 꽃입니다. 이 노래에서 고향은 잘 살고 풍요로운 곳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추억과 함께 어머니가 아직 살고 계시고 아버지가 묻혀 계신 곳이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는 영원히 상실될 수 없는 고향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추리꽃을 어머니와 할머니의 공간이었던 뒤뜰 장독대 옆에 피어있던 꽃이라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뒤뜰은 장독대가 있는 아녀자들의 공간입니다. 옛날에 원추리꽃은 집안 뒤뜰 잘 보이지 않는, 남정네들이 자주 출입하지 않던 공간에 심어두고 아녀자들이 즐기던 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근심을 잊게 해주는 꽃이라 해서 ‘망우초(忘憂草)’라고 불렀던 이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꽃이 아름다워서 근심을 잊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원추리를 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의남초’라고도 불렸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부장적 전통시대에 여인들의 가장 큰 관심과 걱정거리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원추리꽃을 품고 있으면 아들을 낳게 해주니 원추리야말로 최고의 근심을 잊게 해주는 ‘망우초(忘憂草)’가 아니었을까요?
왕원추리
원추리 얽힌 이야기입니다. 전라도 함평 고을에 초빈굴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당화라는 여인이 7대 독자 집안에 시집와서 살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기만 하면 딸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구박이 날로 심해져서 눈칫밥을 먹고 시집살이를 되게 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아들을 낳지 않으면 죽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용하다는 점쟁이에게도 가보고 영험한 도사가 있다는 절에도 가보았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약을 지어 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참다못한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첩을 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시어머니는 딸의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당화는 시어머니를 찾아가다가 아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여인을 만나 아들 낳은 비결을 물었더니, 꿈에 노인이 나타나 원추리를 캐다 말려 몸에 지니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아들을 줄줄이 낳았다고 합니다. 당화는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말대로 원추리를 지니고 다녔더니 마침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가 돌아오고 고된 시집살이를 면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원추리를 ‘의남초’ 혹은 ‘망우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원추리는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는 꽃이 된 것입니다.
원추리의 꽃은 아쉽게도 겨우 하루밖에 피지 못하는 일일화(一日花)입니다. 오늘 활짝 핀 저 원추리는 내일이면 시들어 입을 다물고 꽃잎은 시들어 스러져 갈 것입니다. 물론 내일엔 또 다른 꽃이 피겠지만요. 그래서 원추리의 라틴어 속명(屬名)인 헤메로칼리스(Hemerocalis)는 ‘하룻밤의 아름다움’이란 뜻이며 서양에서 부르는 이름도 ‘하루백합(daylily)’입니다. 별을 뜻하는 원예종 ‘스텔라원추리’도 있고 주황색의 ‘왕원추리’도 있습니다.
원추리, 그러면 우린 먼저 노란 꽃을 떠올리게 되지만, 저는 봄에 새싹을 내미는 모습도 감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 여름이 시작되면 기다란 난초처럼 생긴 잎사귀 사이로 잎보다도 더 높이 긴 꽃대가 올라와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와 갈래 끝마다 한 송이씩 커다란 노란 별처럼 생긴 꽃이 피는 것입니다. 시골길을 가다 무심코 만나는 꽃, 산기슭 초입에서 한숨 돌리다 만나게 되는 꽃, 공원에서 산책하다 만나게 되는 꽃, 친구네 집 뒤란에서 만나 반가움에 얼싸안고 앉아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꽃, 이런 꽃이 원추리꽃입니다.
생존의 법칙에 따르면 화려한 꽃은 향기가 적고, 향기가 진한 꽃은 색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원추리꽃은 생존의 법칙을 무시하듯 너무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너무 진한 향기도 없는 꽃입니다. 그렇지만 여름철 큰 별과 같은 어여쁜 자태로 피어나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주고, 근심까지 잊게 해주며 좋은 먹을거리가 되어주는 원추리꽃은 너무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오늘 공원 산책길에서 만난 원추리꽃망울을 톡톡 ‘투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