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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Oct 10. 2022

제비꽃

되살아나는 대지의 상징

     

오랑캐꽃.


어찌하여 이 수줍고 작은 꽃이 오랑캐꽃이 되었을까요? 왜 다른 민족을 열등하게 멸시하는 이름인 오랑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걸까요? 듣기만 해도 슬픈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제 예민한 감수성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보기에도 연약하고 가냘픈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꽃이어서 제비꽃이나 병아리꽃과 같은 이름이 어울릴 법한 이 꽃은 느닷없이 오랑캐꽃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 ‘제비꽃’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 피어나는 꽃이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비처럼 제비꽃도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오랑캐꽃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연유를 찾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고려 시대에 북방에서 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인 4월 춘궁기가 되면 먹을 것을 약탈하기 위해 오랑캐들이 쳐들어왔는데 꽃의 뒷모습인 꽃뿔이 오랑캐의 뒷머리와 비슷해서 ‘오랑캐꽃’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뒤쪽으로 쭉 벋은 관처럼 생긴 뿔이 나 있습니다.  

    

제비꽃이 오랑캐꽃이 된 결정적인 까닭을 보여주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이용악의 <오랑캐꽃>입니다.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 전문


우선 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르는 낱말부터 해결하고 갑시다. ‘도래샘’은 도랑 가에 저절로 샘이 솟아 빙 돌아서 흘러나가는 우물이나 샘물을 가리키는 말로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입니다. 시의 앞에 해설처럼 붙어 있는 것을 ‘제사(題詞)’라 합니다. 제사는 시의 본문의 내용과 잘 융합하여 비유적으로 전체를 형성하는 하나의 부분입니다. 오랑캐꽃이라 명명(命名)한 해결의 열쇠는 시 앞에 붙어 있는 제사 부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비꽃의 뒷모양이 오랑캐 머리의 뒷모양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있군요. 여기서 오랑캐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일단 오랑캐는 고려 시대 북방 변방에 살았던 민족의 하나인 여진족으로 드러납니다. 이 시는 고려 장수에 의해 국경 밖으로 황급하게 쫓겨 가는 유이민들의 설움과 비애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형태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까닭 없이 오랑캐 취급을 받는 제비꽃과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한없이 억울하고 비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비참한 우리 민족의 운명을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 즉 식민지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가 이 시의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가냘픈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원에 핀 한 송이 제비꽃.

수줍게 작아서 보일 듯 말 듯

한 송이 사랑스러운 제비꽃 피어있네.

앳된 양치기 아가씨 하나

사뿐한 걸음으로, 발랄한 기분으로,

이리로, 이리로,

이 초원으로, 노래하며 오네.     

아아 제비꽃 생각하기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었다면,

아, 부디 한순간만이라도.

사랑하는 내 님이 내게 다가와,

고이 말려 가슴에 간직하도록

아 부디, 오로지!

오직 잠시만이라도.     

아, 하지만, 아가씨 다가와서는

제비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가련한 제비꽃을 밟아버렸다네.

몸을 떨구고, 죽어가도, 여전히 행복한 제비꽃.

나 이렇게, 그래도 이렇게 죽어갑니다.

님에 의해서, 님을 통해서,

그래도 님의 발아래서 죽을 수 있었답니다.     

 - 괴테, <제비꽃> 전문          


잠시 서양의 문학과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독일의 문호(文豪)라고 일컬어지는 괴테의 시 <제비꽃> 혹은 <오랑캐꽃>으로 번역되는 시입니다. 제비꽃은 자신이 사랑하는 양치기 소녀를 기다립니다. 소녀의 손에 꺾여 잠시라도 가슴에 꽂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 의해서 짓밟혀 죽게 됩니다. 그래도 제비꽃은 오직 사랑하는 임에 의해 죽게 되었어도 행복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괴테의 낭만적 시상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괴테는 문학에서는 낭만주의자였지만 음악에서만은 베토벤과 같은 고전주의 음악에 경도된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의  <제비꽃>  앞부분


괴테의 많은 시가 슈베르트에 의해 곡이 붙여진 데 비해 이 시는 1785년 당시 29살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곡을 붙여 가곡을 만들었습니다. 독일어 제목은 역시 ‘Das Veilchen’으로 제비꽃이란 뜻입니다. 모차르트의 가곡 <제비꽃>은 시와 음악이 잘 어울린 소품으로 슈베르트의 <들장미>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가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비교적 깔끔한 선율에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시기 29세의 모차르트는 갖가지 대곡과 소품을 활발하게 작곡한 가장 창작욕이 충만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태어난 곡이 바로 <제비꽃>입니다. 지면으로는 들려드릴 수 없으니 인터넷에서 꼭 찾아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모차르트의 <제비꽃>을 듣는 순간 음악도 음식처럼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넓디넓은 푸른 잔디로 뒤덮인 언덕에서 보자기를 펼치고 정성껏 만들어 온 도시락을 열어 맛있는 점심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여운.  

             


이번에는 제비꽃을 찾아서 더 옛날 그리스·로마로 함께 떠나볼까요? 그리스·로마신화에 제비꽃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아’와 ‘아티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이아’라는 소녀는 양치기 소년인 ‘아티스’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아티스’라는 청년을 귀여워하던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자기 아들인 ‘큐피드(에로스)’를 시켜 두 사람에게 두 개의 다른 화살을 쏘도록 하였습니다. ‘이아’에게는 영원히 사랑이 불붙는 황금 화살을, ‘아티스’에게는 미움을 갖게 하는 납 화살을 쏘게 하여 이들 사이를 갈라놓게 하였습니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이아’는 못 견디게 보고 싶은 ‘아티스’를 찾아갔지만, 납 화살을 맞은 ‘아티스’는 ‘이아’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아’는 결국 비통한 나머지 울다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아프로디테(비너스)’는 괜히 안쓰러워져서 ‘이아’를 작고 가련한 꽃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이 꽃이 바로 ‘제비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제비꽃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제비꽃에 얽힌 신화나 전설도 많고, 미소년 아티스의 피에서 생겼다든지, 페르세포네가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에게 잡혀갔을 때 핀 꽃으로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제비꽃을 되살아나는 대지의 상징이라 여겼습니다. 독일에서는 봄의 전령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에서는 3월에 다뉴브강(도나우강)에서 처음으로 피는 제비꽃을 찾아서 거기에 인사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흰제비꽃


근대 서양 역사에서 제비꽃 하면 떠오르는 여인이 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 조세핀이 제비꽃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남편과 함께 감옥에 잡힌 그녀에게 옥졸의 딸이 가져다준 제비꽃다발이 석방의 알림이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무엇보다도 제비꽃을 사랑하고 옷에도 제비꽃 자수를 놓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과의 재혼 후에도 생일마다 나폴레옹이 제비꽃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조세핀과 함께 나폴레옹 자신도 이 꽃을 좋아하고 나폴레옹 지지자들의 표장도 되었다네요. 나중에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되어 갈 때 “봄에 제비꽃이 필 때 돌아오리라”라고 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라는 조선 후기 문인 유한준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지요. 제비꽃을 아는 사람에게만 제비꽃이 보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이 끊어지면 사랑도 끝나는 것이지요. 조세핀도 나폴레옹과 이혼하자 제비꽃에 대한 사랑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비꽃은 제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많은 시인이 말했듯이 이 작은 풀꽃을 보려면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않아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보아야 수줍게 드러나는 제비꽃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고들 합니다. 겸손한 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꽃에 눈을 맞추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이형기는 제비꽃이 앉은뱅이꽃이랍니다. 작년 피었던 자리에 또 피는 꽃이지만 나약한 이 풀꽃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앉은뱅이꽃이 되어 밀려나 있고, 사나흘 지나면 지고 말 뿐이라고 합니다. 소멸의 꿈을 안고 다시 피는 꽃이랍니다.  

         

앉은뱅이꽃이 피었다.

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

또 피었다.     

진한 보랏빛

그러나 주위의 푸르름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는 풀꽃     

이름은 왜 하필 앉은뱅이냐

그렇게 물어도 아무 말 않고

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이다.

그래 그래 지지 말고

덧없는 소멸

그것이 꿈이다.

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

이제는 없는 그 꿈

작년 그대로 또 피었다.     

   - 이형기, 앉은뱅이꽃 전문          


사실 꽃은 짧게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끝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은 비천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저마다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연만이 영원할 뿐입니다. 이형기가 노래했듯이 제비꽃도 사나흘이면 지고 맙니다. 아니 소멸하고 맙니다. 이형기는 결국 우리는 제비꽃처럼 소멸 자체가 꿈일 뿐이고 허무만 남았을 뿐인데도 또 꿈꾸며 다시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이라는 것이지요.

              

호제비꽃


봄이 활짝 핀 들판이나 공원에서, 동네 길섶이나 건물 벽 아래에서, 심지어는 도시 한복판 도로의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아주 소심하고 앙증맞은 제비꽃은 봄날의 표상이고 삶의 대변인이자 우리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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