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배 Oct 08. 2022

찔레꽃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있는 꽃

찔레. 어쩐지 사람 이름 같지 않으신가요? 그것도 참 순박하고 순수하며 예쁜 여자의 이름 같지 않나요? 뭔가 말 못 할 애절한 사연을 가지고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려서 그리움과 비련의 여주인공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요? 저에겐 그런 꽃입니다. 봄바람에 꽃잎을 날리며 피를 토하듯 내게 다가와 사연을 들려주는 꽃. 역시 꽃의 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 김용택의 시 한 편 보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찔레꽃 이야기는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찔레꽃은 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랍니다. 아마도 찔레꽃을 빼놓으면 저는 살아 있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주 오래된 농담입니다.     

       


노래를 부르리

캄캄한 저 산들을 넘어

다 버리고 내가 왔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리운 너의 이름을 부르리

어둔 들판 바람을 건너

이렇게 내가 왔다     

이제는 목놓아 불러도

없는 사람아     

하얀 찔레꽃 꽃잎만

봄바람에 날리며

그리운 네 모습으로 어른거리는

미칠 것같이 푸르러지는

이 푸른 나뭇잎 소리

밤새워 피를 토하며

내가 운다.     

 - 김용택, <푸른 나무 2 - 소쩍새 우는 사연> 전문    

      

우리 새 가운데 소쩍새만큼 사연 많고 문학이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새도 드물지요. 봄밤에 구슬프게 울어대는 이 새의 다른 이름은 두견(杜鵑)입니다. 이 새가 봄밤에 온 산을 돌아다니며 피를 토하며 울어대고, 그 피가 진달래꽃으로 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한자로 두견화(杜鵑花)라고도 부릅니다. 소쩍새라고 부르는 것은 ‘솥이 작다’라고 ‘소쩍소쩍’ 울어대니 곧 풍년이 들었다는 것이고, 풍년을 알리는 풍년조(豊年鳥)라는 뜻이 됩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름과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여기서 다 말하기엔 지면이 부족합니다.     


위 시에서 화자(話者)는 지금은 떠나가고 없는. 혹은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 찔레꽃을 닮은 그리운 사람을 부르려고 소쩍새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피를 토하며 온 산을 돌아다니며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소쩍새는 ‘나’라고. ‘나’인 소쩍새가 우는 사연은 찔레를 닮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길섶에 피어나는 꽃이 항상 즐거워서, 행복해서 함빡 큰 웃음을 지으며 피어있는 것은 아니지요. 때로는 슬픔으로, 외로움으로, 인고(忍苦)의 과정을 담고 그 모든 것을 달래고 어루만지며 피어있기도 합니다. 그런 꽃이 많겠지만 찔레꽃을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겠지요. 이러한 찔레꽃은 대중가요로 많이 불렸습니다. 대중가요의 제일 많은 대상이 되는 꽃이 바로 찔레꽃이 아닌가 합니다. 대중가요이지만 노랫말은 시처럼 애달프고 서러운 감정이 절절히 스며있습니다.

                

먼저 일제강점기에 불린 가장 오래된 노래인 백난아의 <찔레꽃> 가사를 살펴볼까요.   

  

백난아 <찔레꽃>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앉아 백인(찍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량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 김영일 작사 · 김교성 작곡 · 백난아 노래, <찔레꽃> 가사 전문   

  

야트막한 산기슭에서 여지없이 찾아볼 수 있는 찔레꽃을 소재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대부분의 찔레꽃은 흰색으로 알고 있는데 이 노래는 독특하게도 ‘찔레꽃 붉게 타는~’으로 시작하여 국경찔레(분홍찔레)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국경찔레꽃이 얼마나 고운지 볼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찔레꽃>은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2년에 백난아가 부른 트로트 가요입니다. 처음 발표했을 때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고, 이후 광복과 한국전쟁과 같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노래의 가사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많은 람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어 '국민가요'로까지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쪽 나라 내 고향’, ‘찔레꽃 핀 북간도’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노래는 김교성과 백난아가 만주 공연을 하고 온 뒤, 만주 독립군들의 고향을 바라보는 심정을 담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삭풍이 부는 북방의 이국땅에서 고향과 동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사연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더구나 백난아의 서정적이고 애절한 목소리와 잘 어울려 나라 잃고 타국에서 떠도는 아픔과 실향민들의 향수를 대변하는 노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고생하다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동포의 애환을 담아 만든 노래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두 번째 노래로 7080 시대 노래 방송에 가끔 등장하는 이연실의 <찔레꽃> 가사입니다.   

    

찔레꽃이 담겨있는 이연실의 첫 번째 독집앨범(1975 히트레코드)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 주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 주

내 친구가 날 찾아도 엄마 엄마 울지 마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러기 기럭기럭 날라 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라 갑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벌레 우는 밤

시골집 뒷산 길이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 이연실 개사 및 노래 · 박태준 작곡, <찔레꽃> 가사 전문   

  

1972년 이연실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과 컴필레이션 음반(편집앨범)을 발표하면서 ‘찔레꽃’을 음반에 실어 발표했습니다. 이 노래는 이원수의 동시를 개사했다고 알려졌는데 곰곰이 잘 살펴보면 여러 개의 동요가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찔레꽃은 하얀 찔레꽃입니다. 찔레꽃은 진달래꽃과 더불어 배고픈 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허기질 때 찔레의 어린 순을 따먹었기에 배고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그리워지는 꽃입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찔레순을 따 먹으며 엄마를 부르다가 서러워져서 울던 시대를 우리는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 가사에서 찔레꽃은 죽음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엄마에게 자신을 양지바른 곳에다 묻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면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가사가 일관성이 없고 다양한 모티프가 들어간 것을 봐서는 여러 개의 동시 가사들이 두서없이 결합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정리하면 찔레꽃은 ‘엄마’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찔레꽃의 본질적인 측면과 관련이 높을 개연성이 큰데, 그 이유는 찔레꽃의 전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찔레꽃이 왜 가족을 그리워하고 죽음과 밀접한 관련 있는 꽃이 되었는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찔레꽃에는 슬픈 전설이 있답니다. 이야기는 고려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몽골족의 침략을 거치면서 고려는 몽골족에 굴복하여 온갖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어여쁜 고려 소녀들이 조공으로 몽골에 끌려가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착하고 순박한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도 있었답니다. 다행스럽게도 찔레를 데리고 간 지체가 높은 몽골인은 찔레를 어여삐 여겨 딸처럼 사랑을 주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찔레는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고려에 두고 온 부모와 동생이 보고 싶어 매일매일을 상심의 나날로 보내게 됩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찔레의 몽골 주인은 심부름꾼을 고려로 보내어 가족을 찾도록 했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더욱 상심한 찔레는 몽골 주인의 허락을 받고 직접 고려로 찾아와 방방곡곡 가족을 찾아 헤매었지만 찾지 못하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찔레는 오랑캐의 나라로 다시 돌아가서 사느니 차라리 고향에서 죽는 게 다고 생각했습니다. 찔레는 수없이 가족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고향 근처에서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가련한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산골짜기와 개울가에 찔레와 닮은 순박한 흰 꽃이 피고, 찔레가 흘린 눈물은 분홍 꽃이 되어 피어났고, 엄마와 동생을 부르던 아름다운 목소리는 은은한 향기가 되어서 온 산천에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그 꽃이 바로 찔레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과 서러움의 꽃이 된 것이지요.  

             

세 번째는 한국적 감수성을 노래한 절창의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입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듯 시작하다가 손에 작은 종을 하나 들고 박자를 맞추며 이 노래를 부를라치면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습니다.  

        


(노래는 지가 겁나 잘하는 디유. 내년 유월 찔레꽃 가뭄이 들고 꽃이 피면 찔레꽃 흐드러진 달빛 아래! 자작나무 숲길에서 불러 드릴랍니다. 시방은 아녀유)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 장사익 노래, <찔레꽃>   

  

1995년 어느 날 장사익은 집 앞 화단에서 활짝 핀 장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싸한 향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벌·나비가 취하고도 남을 알싸하고 달콤한 향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미에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장미의 향기가 아니었습니다. 향기의 주인공은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장미의 뒤에 몰래 숨어있었던 하얀 찔레꽃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털썩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뒤에 찔레꽃 앞에 주저앉아 한없이 운 사연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바로 찔레꽃이었음을 깨닫고 서럽게 운 것이었습니다. 자신과 닮은 찔레꽃을 보고 향기에 취하고 노래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 곡이 너무도 유명한 장사익의 <찔레꽃>입니다.

    


우리 노래에 담겨 있듯이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꽃이 찔레꽃입니다. 노래로 치자면 아리랑에 교할 수 있는 꽃이지요. 찔레꽃은 슬픔의 꽃입니다. 장사익이 노래했듯이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꽃입니다. 서양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열적인 꽃이라는 장미의 원조가 되는 꽃이 찔레꽃입니다. 18세기 말 유럽과 아시아에 피는 찔레꽃을 개량한 꽃이 장미꽃입니다. 그러니까 장미도 찔레꽃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장미의 화려함 뒤에는 찔레의 슬픔과 서러움이 담겨 있을 겁니다. 그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진실이겠지요.  

             

숲은 끝이 없고

길 또한 아름다워라

우리들의 사랑 또한 그러하리

걷다가, 처음 손잡고 걷다가

한 무더기 하얀 꽃 앞에서

당신은 나에게 꽃 따주며 웃었네 하얀 찔레꽃     

오월의 숲에 갔었네

그 숲에 가서

나는 숲 가득 퍼지는 사랑의 빛으로

내 가슴 가득 채웠다네

찔레꽃 받아든 날의 사랑이여     

이 세상 끝없는 사랑의 날들이여!

바람 불고 눈 내려도

우리들의 숲엔 잎 지는 날 없으리.     

 -김용택, <찔레꽃 받아들던 날> 부분    

      


찔레꽃은 끝이 없고 아름다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실 찔레는 온몸에 가시가 돋쳐 있어서 꽃이 예쁘다고 꺾기라도 할라치면 영락없이 상처를 입게 되겠지요. 사랑을 위한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그래서 '찌르네' '찌르네' 하다가 그만 찔레가 되었겠지요.                    

          

이전 02화 제비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