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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Sep 25. 2022

낙지다리

펜타곤(pentagon) 닮은 꽃


날이 추워지면 가끔 매운 것이 먹고 싶어져 낙지덮밥집을 찾곤 합니다.

     

예전에 국회에서 일할 때 여의도에 있는 직장 근처의 낙지덮밥집에 같은 방 직원들과 함께 가곤 했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혀를 빼물고 매워하면서도 잘 먹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모시조개탕의 시원한 맛을 더하여 밤새워 일할 기운을 얻곤 했습니다. 그때는 국정감사 준비하느라 밤을 새워 일해야만 하는 때가 많아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저녁 식사가 필요했었습니다. 소싸움을 하기 전에 주인이 소에게 낙지를 먹여 힘을 키우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소도 힘을 내는데 우리도 낙지를 먹고 힘을 내어 일할 수 있었을 것 아닐까요?     

낙지덮밥(네이버 이미지)


어느 해 몹시 추운 겨울날, 눈까지 오는 한파 속에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오리털 파카에 마스크까지 하고 발을 동동 굴러가면서 추위 속에서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료와 함께 몸을 녹이려고 근처에 있는 무교동 낙지집에 가서 낙지덮밥을 먹고 나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윗옷을 거의 다 벗고 나왔는데도 전혀 춥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가끔 낙지집을 찾곤 합니다. 지금은 먹는 이유가 약간 차이가 납니다. 힘을 내어 일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굴에 통증이 있고 추우면 더욱 아파지게 됩니다. 그래서 추운 날에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매운 음식을 통해 얼굴에 열을 내기 위해 먹으러 갑니다.

    

잠깐 분위기를 전환해보겠습니다. 오징어 다리는 몇 개일까요?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바로 10개입니다. 그럼 낙지다리는 몇 개일까요? 쉽지 않죠? 8개랍니다. 문어과인 문어, 낙지, 주꾸미는 다리가 8개이고, 오징어과인 오징어와 꼴뚜기는 다리가 10개입니다. 이제 다시는 다리 개수를 혼동하지 않겠죠?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파주 운정에 있는 가온호수공원 근처입니다. 혹독히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호수 주변이나 동네를 산책합니다. 산책하는 것은 운동을 위한 목적도 있고 우리 동네에 있는 꽃들을 탐사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호수공원과 연결된 좁다랗고 긴 소리천이라는 물길 옆에도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어 자주 갑니다. 물이 깊지 않고 유속이 느려 수생식물들이 많이 물가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들꽃이 낙지다리입니다. 처음에는 이름을 몰라 이리저리 물어서 알게 되고 참 희한하게도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긴 것은 약간 징그럽지만 이 풀은 여성들의 피부 주름 개선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낙지다리를 이용해 ‘낙지다리 추출물을 이용한 피부 주름 개선용 조성물’을 만들었고 생활 뷰티 기업 ○○산업이 수생식물인 '낙지다리'의 추출물로 피부 주름 개선 화장품을 개발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꽤 쓸만한 풀이지요. 물가에서 쓸모없이 피어있는 듯싶지만, 알고 보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잡초입니다.

    


이 꽃의 학명은 Penthorum인데 그리스어의 '다섯(5)'를 뜻하는 pente와 '특징'이라는 뜻의 horos의 합성어로서 꽃 부분이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끝이 5개로 갈라지고, 꽃잎은 없고 10개의 수술은 꽃받침 밖으로 솟으며 심피는 5개로서 중부까지 합쳐지고 암술대는 5개로 짧으므로 꽃 부분이 5개로 되어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이 꽃은 숫자 5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펜타곤(위키백과)

이 꽃 학명과 같은 5각형의 유명한 건물도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영어로 pentagon은 오각형이라는 뜻)입니다. 부지 모양에 따라 최대한의 공간 창출을 하고자 한 결과가 오각형 모양이었고, 5층까지 있으며 층마다 다섯 개의 링 복도가 있다고 합니다. 낙지다리 씨방을 보고 지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우리 동네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낙지다리꽃이 1997년 산림청 선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전주일보 2018년 9월 10일 자 기사에서는 전주시민의 사랑을 받는 오송제 희귀식물 '낙지다리 꽃'이 사라졌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소리천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이 꽃이 멸종위기 식물이라니 앞으로는 귀한 대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낙지를 먹듯 낙지다리를 뜯어 나물로 데쳐 먹으면 힘이 넘쳐날까?’ 이런 어이없는 상상을 해보면서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낙지다리꽃을 어루만져 봅니다. 사람들이 이 풀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그 흔한 꽃말 하나도 붙여놓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독자들께서 물가를 가다가 혹여라도 이 풀꽃을 보시면 땀 흘리며 먹던 낙지덮밥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풀꽃이 아름다운 꽃이라고 다시 생각하실 것이고 이 풀꽃의 재미있는 이름이 떠오른다면 오랫동안 곁을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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