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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Oct 01. 2022

며느리밑씻개(사광이아재비)

그 옛날 여인들의 한(恨)

우리 들꽃에는 며느리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하는 것이 며느리밥풀, 며느리배꼽, 그리고 며느리밑씻개와 같은 풀꽃입니다. 모두 다 고부(姑婦) 간의 갈등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미움이 바탕이 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 며느리를 멸시하는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고,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짜증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꽃들에 관한 이야기는 있어도 시나 소설의 글감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이 꽃들은 며느리밑씻개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꽃이 저리도 곱고 아름다운데 이름은 참 고약하게 지었습니다. 다른 이름인 사광이아재비란 이름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불유쾌한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인 ‘의붓자식의 밑씻개’가 들어오면서 의붓자식이 며느리로 바뀐 까닭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교도소 안에서 우리 들꽃을 키우며 들꽃에 관한 책까지 쓴 황대권은 <야생초 편지>에서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읍 상리에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진 내력이 전해져오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붙인 이름이라는 겁니다.

     

앞에 있는 며느리밑씻개는 우리 동네에 있는 옆 아파트 단지 정원에 빽빽하게 심긴 영산홍 사이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자생하고 있는 꽃입니다. 며느리밥풀은 우리 동네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높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며느리배꼽은 우리 동네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천으로 널려있다고 하겠습니다. 생태교란종인 환삼덩굴이나 박주가리와 함께 무엇이든 휘감고 타고 오릅니다. 이에 비해 며느리밑씻개는 일 년에 한두 개체밖에 찾을 수 없습니다. 며느리밑씻개가 며느리배꼽보다 생태 교란에 대응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습기가 있는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도시의 건조한 땅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며느리밑씻개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우리 동네도 도시화로 인해 며느리밑씻개가 살기에 적절한 생태환경이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며느리배꼽(사광이풀)


며느리밑씻개는 마디풀과의 덩굴식물입니다. 이름과 다르게 꽃은 분홍색으로 참 작고 앙증맞습니다. 자그마한 몽우리에 꽃이 피어나는데 자세히 보면 참말 예쁘고 아름답지요. 며느리밑씻개는 꽃잎이 없는 꽃입니다. 꽃잎처럼 다섯 갈래로 나뉜 것은 꽃받침이며, 꽃받침의 끝은 더욱 붉어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잎자루며 줄기에는 아래를 향한 갈고리 모양의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가시가 있어 스치는 날엔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며느리배꼽은 열매가 볼 만합니다만 꽃은 며느리밑씻개만 못합니다. 고마리꽃과 비슷하게 생겨서 언뜻 보면 헷갈리기 쉽습니다. 고마리꽃은 서식지가 달라서 물속이나 물가에서 엄청난 개체가 군락을 이루어 피고 있습니다. 

         

고마리


상상해보면 예전에는 오늘날처럼 흔하게 종이를 사용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겠지요. 물론 화장지나 휴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고요. 그때 뒷간(화장실)에 가서 일을 본 뒤에, 혹은 밭일을 나갔다가 급하면 근처 숲에 가서 볼일을 보고 뒤처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좀 넓은 풀잎을 모아서 처리했을 겁니다. 좀 더 가까운 시대에는 신문지나 일력(매일 한 장씩 잘라버리는 달력)을 뜯어서 뒤처리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며느리밑씻개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이야기의 흐름은 비슷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미워하는 내용에서는 결국 동질성을 갖고 있습니다. 

     

황대권, <야생초편지>


하루는 시어머니가 밭을 매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 주저앉아 일을 보았겄다. 일을 마치고 뒷마무리를 하려고 옆에 뻗어나 있는 애호박잎을 덥썩 잡아 뜯었는데, 아얏! 하고 따가워서 손을 펴 보니 이와 같이 생긴 놈이 호박잎과 함께 잡힌 게야. 뒤처리를 다 끝낸 시어머니가 속으로 꿍얼거리며 하는 말이 “저놈의 풀이 꼴보기 싫은 며느리년 똥눌 때나 걸려들지 하필이면…….” 해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네 그려.

 - 황대권, <야생초 편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그리 곱지 않던 옛날, 시어머니가 풀을 베어 화장실에 가져다 놓았다. 평소에는 며느리가 할 일이지만 그날따라 시어머니가 기분 좋게 풀을 베어 가져다 놓았다. 며느리는 여느 때처럼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어서 며느리가 나오는데 엉덩이는 엉거주춤,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다. 미운 며느리 약 올리려고 시어머니가 잎이 까칠하고 살이 긁히는 풀을 베어다 놓은 것이다. 며느리는 그것도 모르고 밑을 닦았던 터. 그래서 이 까칠한 풀은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며느리를 밑 닦이로 놀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게 좀 험하다 싶지만 며느리밑씻개의 모양을 보면 미움 속에 다져지는 정감이 배어 나온다.

 - 변현단, 안경자,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약이 되는 잡초음식)>   

       


어머니

내 핏줄도 아닌 어머니

아들 온전히 내어주기가

눈알 빼주는 일인 줄 알지만     

(중략)     

그 꽃 피거들랑

젖니 갓난 손주 데불고

내뺀 줄 그리 아세요.

 - 강희창, <며느리밑씻개> 


제 어머니도 시집살이를 많이 하신 편입니다. 종일토록 뙤약볕 아래 논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와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애들 젖 주고, 그러고도 밤늦게까지 전기도 없는 방에서 등잔불 켜고 베틀에 앉아 베를 짰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인 우리 할머니도 어머니를 시집살이를 시킨 장본인이십니다. 당신이 그러하셨듯이.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힘들겠지요. 그래서 고부갈등이 일어나겠지요. 그러나 며느리는 너무 힘들어 며느리밑씻개 꽃이 피거든 도망간 줄 알라고 경고합니다. 강희창은 며느리밑씻개의 가시에 주목했습니다. 이 풀은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가면 어떻게든 그를 따라 도망가려는 것처럼 가시가 밑으로 향해 있습니다. 그 가시를 이용해 옷이나 몸에 착 달라붙어 자기를 떼어놓고 가지 말라는 듯이 애원합니다. 혹여라도 떼어놓고 가는 무정한 사람이 있다면 가끔 팔을 할퀴고 상처를 남겨주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이 꽃에 대해 안쓰러움과 동정심이 마음 한구석에서 몽실몽실 피어오릅니다.  

   

어떤 분들은 ‘며느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꽃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당당한 이름도 아니고 일본어에서 온 비루하고 부끄러운 이름이며 며느리를 폄훼한 반생명적이고 반인륜적이고 야만성을 표출한다 해서 이 이름을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며느리는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피는 지엄한 어머니로서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인격체이며 결코 미움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 땅의 며느리가 담당해온 생명의 지킴 속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그 며느리가 누군가의 누이이며, 또 아내이며, 아이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며느리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이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고부갈등을 원만히 해결해야 건강한 가족이 되듯이 이름도 사광이아재비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밑씻개란 이름도 그 연유야 어떻든 정감이 가는 이름이어서 버리기에는 아깝습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란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나쁜 뜻은 없으니 너그러이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시어머니의 사위 사랑이 담긴 사위질빵이란 꽃도 있습니다. 사위의 짐이 무거울까 걱정하여 여리고 약한 사위질빵 덩굴로 지게 끈을 만들어서 끊어지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며느리도 자식입니다. 시어머니도 부모입니다.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사위질빵의 이야기처럼 사위를 사랑하듯 며느리를 사랑한다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고부갈등이란 말은 없어질 것입니다. 

     

사위질빵


시대가 달라져서 시어머니보다 며느리가 우위에 놓이고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칫밥을 먹는 요즘과 비교한다면 아주 딴 세상일인 것 같지만 제 어머니 세대까지는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였답니다. 불과 30~40년 전이죠. 이젠 여성들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며느리밑씻개’가 아니라 ‘시어머니밑씻개’로 개명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꽃 이름 가운데 유독 ‘며느리’가 붙은 것에는 애달픈 사연이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그 옛날 여인들의 한을 아련하게나마 심어주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며느리밑씻개의 꽃이 저렇게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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