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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캅 황미옥 Jul 23. 2024

나는 나를 사랑했을까

나는 사랑을 많이 베푸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주위에 있는 사랑을 받아들였을까?

나는 나를 사랑했을까?

나는 내가 존경하는 분이 암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인생수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암이 참 많다. 암이 도대체 뭘까. 암이라는 것에 짓눌러서 나의 하루를 보내야만 하는걸까. 아픈 것만 생각하면 우울해지기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글을 쓸 때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그 행위가 좋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명상할 때 잡생각이 떠올라도 다시 내려 놓는다. 그 행위가 좋아서 계속 명상을 하게 된다. 아침시간은 내 정신이 맑다. <인생 수업>에는 무수히 좋은 문구들이 많다. 하지만 넉넉히 생각할 문장들이기에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내게 와닿는 문장을 찾으면 아침마다 글을 썼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한 문장에서 멈추어 생각해보는 시간이 좋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는 늘 있어왔다. 단지 내가 멈추지 않아서 덜 느꼈을 뿐이다.

내가 만약 나의 최후의 순간에 신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사랑이라는 것은 아주 큰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인색던걸까. 아이들에게는 주는 사랑에 익숙했다. 하지만 받는 사랑은 잘 몰랐던 거 같다. 예빈이와 예설이는 늘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내가 바쁘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항상 제 자리에서 있었는데도 말이다. 잘 알아치리자. 순간순간 웃자.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주는 것도 사랑이다. 마음을 같이 써주는 것도 사랑이다. 편지로 안부를 묻는 것도 사랑이다. 전화 통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은 표현에 따라 다르게 현출된다. 받아 들이는 사람의 마음에서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모든 것은 다를테니까.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 사랑을 받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다면 어때야 할까? 자기 마음을 평온하게 둘 수 있는 사람이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내 마음이 어지러우면 사랑이 나를 찾아봐도 잘 느끼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할테니까.  

내 옆을 돌아본다. 얼마전에 내 곁에 다가온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사인회장에서 나를 잘 모르는데도 나를 챙겨주신 자이언트 작가님들이 떠오른다. 어제 본 세쌍둥이 하율이 엄마가 떠오른다. 사인회에 가려고 했는데 가지 못했다고 꽃을 보내 주신 관리팀장이 떠오른다. 부산청에서 서울청으로 옮긴 동료가 잠시 사인회장에 들려주었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나눔해주신 성유리 원장님이 떠오른다. 성우 삼촌 생일이라서 어제 가족들과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해주신 집밥이 생각난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왔다. 반찬도 한가득 챙겨주셨다. 내가 멈추니 내가 받은 사랑들이 떠오른다.

내가 준 사랑은 있을까? 나는 갑상선이 있어 추척관찰하는데 그 병원에 갈 때면 아침 5시 23분에 출발하는 첫 지하철을 탄다. 6시에 병원에 도착하는데 내가 첫 손님이다. 매번 갈 때마다 샷시를 열어주시는 할아버지와 친해졌다. 내 책을 선물해드렸다. 그리고 최근에 내가 쓴 편지들과 전화통화가 떠오른다. 역시 나는 사랑을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

나는 나를 사랑했을까?

나는 눈물이 많다. 잘 운다. 그런데 <우리 딸 머리 깎을 때 가장 많이 아팠습니다>를 집필할 때는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저자 특강을 할 때도 울지 않았다. 나는 마음 먹으면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주 멈추고 싶다.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내가 걸어온 길의 점을 이어보고 싶다. 그 행위를 통해서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이제 아침밥 할 시간이다. 6시 30분. 오늘 글쓰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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