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빈이 예설이는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엄마 아빠를 닳았습니다. 첫째 예빈이를 보면 저의 어린시절이 보입니다. 알려준 것이 없는데 어쩜 그렇게 같아 보일까요. 친구따라 강남갈 아이입니다. 여러친구보다 한 친구와 친해지려는 성향 또한 저와 같습니다.
예설이가 백혈병 치료할 때 저는 4개의 칸이 있는 노트에 일정을 기록했는데 한 칸은 <외부와의 소통>이었습니다. 바쁘게 예설이의 치료가 진행되었지만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고싶었습니다.
예설이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지 707일째입니다.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간병했던 저는 직장에 복직한지 1년이 지나 회사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회사에도, 예설이 병원에서도 늘 사람을 만나고, 친한 사람들은 챙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예설이, 예빈이 엄마입니다. 남편과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언제가는 아이들 곁을 떠나야할 날이 올겁니다. 저희가 번 돈을 주는 것보다 아이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힘든 상황이 닥쳐서 스스로 극복해내야 하는 순간만큼은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순간에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면 상처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상처에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까지 더해지면 더 큰상처가 될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가진 상처를 사람으로 채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설이 백혈병 치료할 때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작년 9월부터 <우리 딸 머리 깎을 때 가자 많이 아팠습니다> 초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글 쓰고, 예설이를 챙기고, 가족들을 챙기면 하루가 다 갔습니다.
예설이 치료일기가 담긴 책을 출간하고 든 생각은 글을 쓰면서 제가 많이 치유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치유가 어느 정도 되었으니, 저의 빈공간에 사람들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힘들 때 텅빈 공간을 사람으로 채우려고 애쓰기보다 제가 더 단단해졌을 때 사람과 소통하니 저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부터 자립합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힘든 일이 저에게 혹시 닥치면 혼자서 견뎌내보고자 합니다. 제가 훌훌 털고 일어난 뒤에 세상과 연결되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저를 돌아보는 잠깐의 아침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