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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해요와 홍미옥

by 황미옥

야해요와 홍미옥


남편과 나. 나는 신임순경일 때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형사계에서 양형사로 불렸고, 나는 경찰에 갓 들어와 지구대 순찰팀에서 근무하는 신임이었다. 나보다 배명이 1년이 빨랐던 남편은 경찰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린 체포호신술 경진대회가 있어 매일 경찰서 체력단련실에서 훈련하면서 만났다. 훈련을 마치고, 사람들과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졌다.


남편은 대학 친구들이 “야해요‘라고 불렀다. 남편의 이름에 ㅇ 을 모두 빼면 야해요이다. 재밌는 이름이다. 나는 경찰서 범예과에 가면 정주임님이 나를 홍미옥이라고 부르셨다. 예전에 내가 신임일 때 박민선 선배가 나를 마옥이라고 불렀었다. 친근함의 표시로 느껴져 좋았다. 나도 민선 선배를 만선 선배라고 불렀다. 얼마전 서울 교보문고 잠실점에서 사인회를 마치고, 뒷풀이장에서 남편이 소개할 때도 나는 그의 야해요를 말해버렸다. 작가님들이 편안하게 남편을 대했으면 하는 바람에 비밀을 공개했다.


2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남편이 서른에 꼭 결혼해야 한다고 매번 말했다. 매번 듣다보니, 꼭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의 신혼집은 하숙집 같았다. 남편은 범인 검거로 집에 늦게 오거나 못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서른평대의 집은 거의 나의 공간이었다. 2년 살다가 집주인이 나가달라고 해서 이사를 해야만 했지만.


자녀를 갖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경주에 있는 대추밭 한의원도 가보고, 어머니께서 인삼 요리도 해주시고, 좋다는 것은 많이 시도했다. 야간근무를 해서 그런 것일까 뜻대로 임신이 잘되지 않아 인공수정 시술을 받아보기로 했다. 나는 예빈이 예설이 둘 다 인공수정으로 낳았다. 결혼 6년, 결혼 10년만에 딸들을 만났다. 둘 다 시술 전에 6킬로그램 정도로 살을 빼고 준비했다. 남편도 운동하고, 술도 자제하면서. 운이 좋게도 한 번 만에 두 번의 시술에 성공했고, 두 딸이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


출산 전에 위기도 있었다. 첫째 예빈이를 가지고 26주차 쯤에 경미한 교통사고였지만 배에 무리가 되었나보다. 자궁쪽에 출혈이 있었고, 배가 뭉치는 증상이 계속 생겼다. 초음파를 보면서 매번 약물을 쓰며 이겨내야했다. 그렇게 힘겹게 태어난 아기가 첫째 예빈이다. 예설이는 무알콜 맥주 먹다가 신호와서 야간에 병원 응급실로 가서 낳았다. 둘째 예설이는 훨씬 수월하게 낳았다. 무통 주사로 두 딸들 모두 웃으면서 낳았지만.


우린 부부경찰로 살면서 두 딸을 낳고 키우고 있다. 부모가 되어 어깨에 책임감도 늘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키워야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평소 알고 지내지 못할 감정을 경험했다. 숙제하라고 잔소리도 해보고, 같이 동화책도 많이 읽었다. 아기띠를 매고 자장가도 불러봤고, 세 시간 마다 깨서 모유주고, 분유도 줬다. 놀이동산도 갔고, 물놀이도 했고, 캠핑장도 다녔다.


남편은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되었고, 나는 마흔 초반이다. 큰딸 예빈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예설이는 6살이다. 덱사메타손 먹고 있는 예설이는 약 부작용으로 마음대로 안되면 울어버렸다. 오늘 아침에도 설이가 병원에 입원중일 때 언니만 할머니 집에가서 비즈로 팔찌 만들었다고 마구 울었다. 결국 우린 짐을 챙겨서 어머니댁으로 왔다. 팔찌 만들러.


20대, 30대를 거쳐 40대가 된 우리 부부. 앞으로의 시간은 책임감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도 늘어가길 바란다. 우리의 인생에 진지함도 좋지만 재미도 가득했으면 한다.

특히 남편이 그럴수 있게 내 욕망의 가지수를 조절해봐야겠다. 내년에는 남편이 주짓수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야해요, 홍미옥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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