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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 『데미안』을 읽고

by 황미옥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거의 2주 동안 읽었다. 통시간이 부족해서 자투리 시간을 쪼개 읽었지만, 이상하게도 책의 리듬이 내 삶의 속도와 닮아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내 안의 무언가를 깨뜨리는 속도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본다. 선과 악, 신과 악마, 죄와 순수.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착한 아이”로 머물 수 없었다.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그를 구해준 것도, 전쟁이 터지기 전 다시 나타나 길을 보여준 것도, 결국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싱클레어 안의 또 다른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데미안은 사람의 형태를 한 ‘내면의 목소리’였다. 깨우는 자, 흔드는 자, 그리고 진짜 나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조용히 나타나 나를 일으켜 세워준 사람들. 위기협상가로서 지치고 흔들릴 때, 글을 쓰는 이유를 잃어갈 때, 혹은 단순히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할 때 내 안의 ‘데미안’이 손을 내밀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너 자신을 살아라.”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다면, 나는 매일 작은 알들을 깨며 살고 있는 셈이다. 가족 안에서, 경찰 조직 안에서, 협상 현장에서,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 속에서. 어쩌면 인생은 커다란 한 번의 각성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깨어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데미안』을 통해 배운 마인드셋은 단 하나다.

“누구의 삶도 모방하지 말고, 내 내면의 부름을 따르라.”

나의 데미안은 결국 ‘내 안의 나’였다.



싱클레어와 나의 공통점


싱클레어는 늘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었다. 밝은 세계에 속하고 싶었지만,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 또한 경찰이라는 직업 안에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을 한다. 매일 누군가의 절망 앞에 서고, 그를 다시 삶으로 이끄는 일은 내 안의 빛과 어둠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과정이다.


싱클레어가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방황했던 시간은, 내가 협상가로서 사람의 마음과 나 자신의 마음을 동시에 설득해야 했던 시간과 닮아 있다. 그는 외부의 권위가 아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용기를 배웠고, 나도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조용히 내 마음의 방향을 듣는 법을 배워왔다.


결국 싱클레어와 나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 그게 우리를 계속 성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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