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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쁜 - 10월 독서모임 기록

by 황미옥


10월, 경찰 동료들과 함께한 독서모임의 책은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이었다. 제목만 보면 술술 읽힐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묵직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꼭 줄을 그으며 읽었다. 이 책은 힘든 시절에 읽는다면,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남을 책이다.


오늘은 세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았던 점은 내 관점을 벗어나, 다른 두 분의 시선에서 머물러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채희 선배는 이 구절을 인상 깊게 읽었다.


“절제된 행동 습관은 ‘사소한 기쁨’을 내면에서 맛볼 수 있게 해 주어 쾌락을 만끽하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데, 현대 생활에서 왜곡되고 잃어버린 가치인 유쾌함, 사랑, 서정성과 같은 것들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유쾌함, 사랑, 서정성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경찰로서 살아가며 일이 점점 복잡해지고 무거워지는 현실도 함께 이야기했다.


진경 언니는 〈절대 잊지 말라〉라는 시를 좋아했다.

특히 이 문장에서 마음이 머물렀다고 했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


그 말을 듣는데, 어떤 하루를 보냈든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주는 순간이 있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나는 이 문장에서 오래 멈췄다.


“그렇게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내가 마치 달팽이처럼 느리게 그리고 절제하면서 지내게 된 지도 벌써 일 년 반이나 되었다… 활활 타오르던 정열의 불꽃은 완전히 사그라졌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내 삶도 달팽이처럼 느리게, 절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그 뜨거움은 어디로 갔을까.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던 끈기, 설렘은 사라지고 지금은 몸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40대가 되면 몸이 달라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예전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쏟아냈지만,

지금은 한 권을 오래 읽고, 오래 생각하며, 쓰고 싶을 때 글을 쓴다. 그게 나다운 속도인 것 같다.


오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루키〉를 봤다. LAPD 신임 경찰관의 일상을 보며, 현장에서 뛰는 동료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새삼 느꼈다. 급변하는 현장은 늘 불안정하고, 그 속에서도 시민을 지켜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또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졌다.


살면서 많은 일을 하려는 욕심보다

한 가지 일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의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삶을 견디는 기쁨은, 결국 지금 이 속도로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삶을견디는기쁜 #헤르만헤세 #힘든시절에벗에게보내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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