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두 딸을 아침마다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셋이 함께 걸어간 길이었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몇 번이나 웃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모습 자체가 웃겼다. 저렇게 작은 손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귀여웠다. 벌써 이렇게 커서 자기 힘으로 학교에 가는구나 싶은 마음에 괜히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예빈이는 언니답게 동생을 챙기고 있었고, 예설이는 그런 언니의 손을 믿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믿음이 엄마인 나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호등 없는 건널목 하나가 늘 신경 쓰이는 구간이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넌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 수 있는 자매가 있다는 건 참 큰 복이라는 것. 그리고 이 아이들을 둘이나 세상에 데려온 나는 참 잘한 선택을 했다는 것.
아이들의 뒷모습이 또 웃겼다. 검은 점퍼에 청바지, 그리고 흰 운동화까지. 맞춘 것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 똑같은지. 요즘 예설이는 검은색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어느새 언니의 취향을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토요일, 예설이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세 번이나 열이 올랐고, 39.6도까지 올라 해열제를 세 번 먹이며 밤을 보냈다.
일요일 아침에는 문을 연 병원을 찾아가 피검사와 수액 치료를 받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또 한 번 내려앉았다. 검사 결과 염증 수치는 2.57로 나왔고, 세균 감염 수치와 백혈구 수치도 함께 올라가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먹었던 토마토를 저녁에 토해낸 걸 보면 속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예빈이에게 말했다.
“예빈아, 아빠한테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해.”
말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아직도 그 시간을 완전히 지나오지 못했다는 걸.
백혈병 치료가 끝난 지 1년 5개월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머리는 이미 끝났다고 알고 있지만, 몸은 아직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깊게 내 안에 남아 있었고, 그렇게 쉽게 끝나는 시간이 아니었다.
일요일에 처방받은 항생제는 오늘 저녁에서야 다 먹였다. 그리고 오늘은 코막힘 증상 때문에 다시 소아과를 다녀왔다. 주말에 더 심해질까 봐 미리 약을 받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는 첫째의 피아노 연주회가 있어 병원을 미뤄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저녁은 시켜 먹었다. 원래는 가지와 방울토마토로 반찬을 해보려 했지만, 그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조금씩이라도 집밥을 해먹는 삶으로 돌아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