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엘라로부터 강의 부탁을 받았다.
허소미 지식아카데미에서 피터 드러커의 책 《성과를 향한 도전》, 《피터 드러커 자서전》, 《매니지먼트》를 반복해서 읽고 강의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외에는 출간기념회나 부탁받은 자리에서 몇 번 강의를 했던 정도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
나는 왜 강의 부탁을 받으면 힘들어할까.
생각해보니 이유는 분명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내가 사용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 시간에 걸맞은, 정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앞선다.
시간관리나 비전체계 강의를 할 때도 이론만 전달해도 충분했을 텐데, 나는 꼭 내 경험을 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강의 하나를 준비하는 데 두 달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강의 섭외가 들어오면 기대보다 부담이 먼저 올라온다. 파워포인트를 잘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도 그 부담을 더 키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거절하지 못했다. 의미 있는 자리에서의 무료 강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부탁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는 변수가 많았다.
예설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남편은 일정 때문에 서울에 다녀와야 했다. 결국 나는 세 번이나 예설이를 직접 픽업해야 했다. 퇴근 후 학교 하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고, 다시 학교까지 뛰어가야 했다. 그렇게 삼 일을 보내고 나니 목요일쯤에는 피로가 몰려왔다.
강의 준비까지 더해졌다. 예설이를 재우고 식탁에 앉아 종이에 끄적이며 준비를 하다 보니 며칠간 수면 시간도 줄어들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오늘 퇴근길, 집으로 걸어오며 휴대폰 녹음을 켰다. 강의를 한다고 가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꺼내봤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들으며 정리해보았다.
이번 강연에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삶에는 좋은 순간과 힘든 순간이 있지만, 돌아보면 힘든 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용기를 내어 결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것.
경찰이라는 직업으로 19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함께 성장해왔다.
내 삶에는 몇 번의 분명한 전환점이 있었다. 엄마의 죽음, 911 테러 이후 시작된 2년 반의 경찰 준비, 경찰이 된 이후 어떤 경찰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며 방황했던 시간들, 그리고 예설이의 백혈병 진단과 내가 병가를 내고 멈춰야 했던 시간까지.
그때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도망칠지, 아니면 버틸지.
나는 매번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 걸음씩 걸어갔다.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그 길 위에서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생각을 정리했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았고, 결국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의를 준비하며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기록은 참 신기하다. 쓰는 순간, 흩어져 있던 생각이 정리된다. 머릿속에만 있을 때는 막연했던 것들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순간 또렷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국 펜을 잡게 된다. 하루의 끝에서, 다시 나를 정리하기 위해.
며칠간 무리를 했더니 오늘은 조금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맑은 정신으로 아침 운동을 하고, 출근길에 다시 강연을 정리해봐야겠다.
조금씩, 내 이야기를 더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