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글방 8월 17일 차]

맏며느리

by 공감녀

★ 17일 차 글감 (8.20 / 수)


글감 : ‘나를 지켜주는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시아버님은 5남 1녀 중 장남. 남편은 2남 중 장남. 즉, 저는 맏며느리입니다.

명절에 모이는 가족 수는 대략 20~25명 사이.

명절 아침 차례가 끝내면 모두 산소에 성묘를 가십니다.

횡성과 홍천 4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떠나시는 친지분들을 배웅하는 것.

딱 거기까지가 나의 경계입니다.


결혼 후 몇 해는 성묘까지 함께 갔지만 어머님이 아프시고부터는 집에서 뒷정리를 하며 머무는 것으로 내 역할을 바꾸었습니다.

부엌 정리와 대충의 청소, 분리수거가 끝나면 쉬는 시간이 옵니다.


유난히 의가 좋으신 형제분들은 성묘를 마치신 후에 꼭 천렵을 하십니다.

홍천이 고향인 분들이라 일 년에 두어 번 꼭 다리 밑, 계곡 근처, 도랑 가에서 고기와 술로 여흥을 즐기지 않으면 떠나질 못하십니다.

조카며느리에 대한 배려인지, 불편해선지 모르나 다시 집으로 오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묘가 끝나면 친정에 갈 차례인데 가까운 곳에서 놀고 계시는 친지분들께 들러 인사를 하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고민이었습니다.

인사하는 게 뭔 대수일까 싶을 겁니다.

그러나 남편은 늘 아쉬워했습니다. 같이 고기도 구워 먹고 좋아하는 술과 왁자지껄 얘기를 이어가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시간은 한정 없이 흐를 테고 빨리 친정에 가고 싶은 내 마음에는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얄미워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경계를 넓혔습니다.

나이 들어가시면서도 아이들처럼 개울에서 놀기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다행인 점들이 있습니다.

우애를 해칠 만큼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고만고만 사는 살림살이는 상대적 박탈감에 마음 끊이지 않을 정도고, 또 그만큼 욕심 없고 순박한 시골내기 어르신들.

그 생각에 다시 시댁 친지들을 찾아갑니다.

명절 치르느라 수고 많았다는 공치사를 잔뜩 듣고, 억지로 고기 한 점이라도 입에 넣은 후 품 넓은 장손 조카며느리의 예의 차린 얼굴을 들이민 후 자리를 뜹니다.


내가 마음을 좀 더 넓게 쓴 후에는 차츰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근래에는 운전을 핑계로 술을 받아먹지 않기도 합니다.

남편도 나이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범접할 수 없는 어른들의 술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장모님 표 명절상이 더 좋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젊을 때는 내 바운더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느긋해지는 구석이 조금씩 생깁니다.

그것이 남편과의 일일 땐 마음을 먼저 내는 게 결국 이기는 일인 걸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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