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순으로 모십니다.
캘리포니아 쪽에 여행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먹어봤을 인앤아웃 버거.
미국 3대 버거 중 하나라던지, 숨겨진 메뉴라던지, 생감자로 만든 신선한 감자튀김이라던지, 최고의 가성비 등등. 인앤아웃 유경험자들은 안 가보고, 안 먹어본 사람들에게 마치 먼 옛날의 전설을 읊어주는 현자가 된 듯 그 황홀한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서러워서라도 LA행 비행기표를 끊고 저 버거를 먹고 와야 할 듯하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인앤아웃 버거가 이곳 밴쿠버 지역에 하루 동안 팝업 스토어를 개장한다는 것이었다. 오전 8시부터 4시까지 선착순 판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토요일 아침 7시,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팝업 매장으로 향했다. 일찍 가서 일찍 먹고 일찍 들어와 쉬어야지.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이람... 8시쯤 도착했지만 벌써 매장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으니 일찍 먹기는커녕, 내 차례까지 버거가 남아서 먹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어림잡아도 300명 이상이 내 앞에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도 일단 버거 티켓은 구매했다 (선착순 버거 수량이 모두 소진되면 더 이상 티켓을 판매하지 않는다).
골라먹는 재미를 기대했건만 메뉴는 더블더블 세트 한 가지뿐이었다. 게다가 감자튀김 대신 감자칩(!?)을 제공한다고 한다. 세트 당 $10 CAD, 가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그다지 싸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의 기대와 점점 멀어져 간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먹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줄을 기다려 본다.
30분.
1시간.
2시간.
3시간.
......
4시간.
나는 이날 땡볕에 앉을자리도 없이 두 다리로 4시간을 버텨냈다. 1시간에 한번 꼴로 견디기 힘든 자괴감이 몰려왔고 줄을 이탈해서 집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조금 과장 보태서) 밴쿠버에서 LA까지 직접 다녀와도 될 시간이다.
내 생애 가장 긴 기다림이었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4시간 동안 기다려 본 경험 따위는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매장 직원들도 미안한지 장시간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에게 판매용 티셔츠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마침내 기나긴 기다림 끝에 버거를 받아왔다.
일단 먹자.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살짝 토스트 된 빵 사이로 적당히 짭조름하고 고소한 치즈, 부드럽고 담백한 패티가 신선한 야채와 함께 어우러져 제법 멋진 맛을 내고 있었다.
그래 맛있다. 그러나 이 정도 맛이라면 우리 동네 근처 버거 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이다.
가까이에 있는 Fatburger, Five guys, Vera's burger, Red Robin 등 다른 브랜드 버거집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제 버거 정도의 퀄리티였다. 감자튀김 대신 등장한 감자칩 또한 일반 시중에서 판매되는 감자칩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4시간의 기다림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난 그저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숨겨진 메뉴를 주문하고 싶었을 뿐이고 (Animal style)!
감자칩이 아닌 신선한 감자튀김을 버거와 곁들여 먹고 싶었을 뿐이고
그 후에 인앤아웃 유경험자들의 무리에 섞여 아직도 인앤아웃을 모르는 무지하고 불쌍한 이들을 온화하게 꾸짖으며 내 경험을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팝업스토어 이벤트는 내 기대와는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다시 LA에 방문할 때면, 인앤아웃 매장 부터 찾아 들르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결국 당일치기 팝업 스토어의 전략이 나에게 정확히 먹혀 들어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