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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저 킴 Dec 21. 2022

견지망월(見指忘月)을 뛰어넘어

내 손부터 씻자

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 없이 따뜻하기만 하다는 밴쿠버 도 이제 옛말이다.

12월 첫날부터, 난데없는 폭설로 인해 밴쿠버는 다시 한번 겨울 왕국이 되어버렸다.

하얗게 뒤덮여 숨죽인 도시 위에 오늘도 어김없이 밝은 달이 떠오른다.


저녁으로 아내가 끓여준 뜨끈한 어묵탕을 후루룩 먹고 있다가 창가에 비친 달빛을 보고 나도 모르게 창가에 다가가 저 밝은 달을 보게 된다. 오늘따라 더 크고 밝은 달을 혼자 보기 아쉬운 맘에 주방에 서있는 아내에게 외친다. 


"와서 달 좀 봐, 진짜 커!"


하지만 한 손에 어묵 꼬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소리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던 아내는 나보다 더 크게 외친다. 


"어묵 먹은 손으로 창문 만지지 마! 먹었으면 꼬지 내려놔!".


창문은 애초에 만지지도 않았지만, 빈 꼬지를 들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이내 조용히 식탁으로 돌아와 못다 한 식사를 이어간다.


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드니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 

올 한 해 또 얼마나 숱하게 겪은 상황이더냐.

함께 달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대해 논해보고 싶지만 달은 쳐다도 안 보고 손가락이 못 생겼다느니, 손가락이 더럽다느니 해대니 답답하고 속상한 노릇이다.

그러나 내게 달을 보라고 권면받은 이들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달을 보려 해도 나의 추한 손가락이 아른거려 거슬리니 어떻게 달에 집중할 수 있었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 그리고 다가올 내년에는 보라는 거 안 보고 내 맘을 몰라준 이들을 원망하거나 답답해할게 아니라 손가락을 내밀어 무엇을 가리키기 전에 내 손부터 비누로 뽀득하게 잘 씻고 윤기가 나도록 핸드크림도 바르고 기왕이면 손톱도 자르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이들이 나와 함께 저 아름다운 달을 올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


밥상 앞에서 머릿속으로 나만의 개똥철학을 늘어놓다 보니 뜨끈했던 어묵탕은 다 식어버렸고, 어느새 식탁 앞으로 다가온 아내가 상냥하지만은 않은 얼굴로 말한다. 

"다 먹은 거지?! 치운다."


"으.. 응"


그래. 오늘 설거지는 아내 대신 내가 후딱 끝내고 커피 한잔 끓여서 함께 달을 보자고 해야겠다. 그러면 아내도 나와 함께 저 아름다운 달을 올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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