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Feb 13. 2019

(2) 경영 전략 컨설턴트 일기: 깍두기가 되다

깍두기지만 출장도 다녀오다..

* 이 글은 18년도 4월에 쓰여지고 19년도 2월에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캐나다의 맑은 공기가 느껴지는 사진

   벌써 프로젝트에 배치된 지 한달이 다 되어 간다.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는다. 벌써 한달인가 싶다가도 고작 한달 지났는데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나 싶다. 우리네 인생이 늘 그렇듯 하루는 긴데 한달은 짧은 느낌이다. 물론 하루가 길게 느껴진 데에는 정말 길었던 탓도 있다. 입사 전에는 11시쯤 일어나 밍기적 대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눈만 뜬채로 이불 속에 있었다. 잠도 새벽 2시 전에 잤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배치된 뒤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매일이 조모임 마지막 날 같다고 느꼈다. 일곱시 반, 늦어도 여덟시에는 일어나야했다. 하루는 두시에 끝나기도 하고 세시 넘어 끝나기도 했다. 하루는 길어졌는데 또 훨씬 촘촘해졌다.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는데 나처럼 멍때리고 누워있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게 칼답이던 카카오톡도 일할 땐 보기가 어려워졌다. (19년도 2월 추가: 요즘은 pc 카톡을 깔아놔서 예전보다는 자주 볼 수 있긴 하다)

직장인들은 어떻게 주 5일을 성실히 회사에 가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할까 늘 궁금했다. 잠이 많고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에 잠과 체력이 부족하면 어떡하나 고민했다. 한달 남짓을 일찍 일어나 출근해본 소감은… 힘들다. 그런데 obligation이 있으니 하게 된다. 그냥 해야되면 하게 되는가보다. 하루가 너무 길어서 지루하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할 일과 배워야 할 것들이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인턴 때와 가장 다른 점이라 생각한다. (19년도 2월 추가: 프로젝트 하다 보니 지루한 순간들도 생기더라.. 예를 들면 논의 기다릴 때라던지.. 물론 그런 시간들도 활용해야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최근에 지루함이 창의력을 만들어낸다는 글을 읽어서 지루한 시간은 지루하게 보내려한다)

   컨설팅 펌에서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고 나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궁금했다. 이 궁금증은 해결이 됐다. 다만 저런 기초적인 것도 모른채로 들어가니  처음 2주는 진짜 힘들었다. 경영 학회 해볼걸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다행히도 이런 막막함이 아예 낯선 느낌은 아니다. 외고 준비를 하다가 처음으로 과학고 대비 수학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 때도 나만 여자였고, 그 때도 중간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 때도 나만  고등학교 첫학기 선행조차 안된 쌩 초짜였다. 그 때 잘해냈으니까 이번에도 할 수 있겠지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생각해 보았을 때 프로젝트 주제가 관심 분야와 전혀 다른, 생소한 분야라는 점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파악이 잘 안되는 점이 힘들었다.산업재만 아니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산업재였다. 뭘 보라는데 어느정도 depth 로 봐야하는지,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봐야하는 지 감이 하~나도 안잡혔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아니겠지만 그냥 저 때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먼저 프로젝트에 들어온 RA 분들이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팀원분들은 너무 바빠보여서 뭘 물어보기도 두려웠다. 그 와중에 어쏘라고 다른 role을 주시는데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다. 피드백 받을 때 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거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살면서 네거티브한 평가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잘했다는 평가를 주로 듣고 살았기 떄문에 일 적인 퍼포먼스에 대한 네거티브한 평가에 취약하다. 컨설팅 펌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 중 많은 비중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고자 노력해야겠다. (19년도 2월추가: 요즘도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데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있고 피드백은 늘 너무 두렵다.. 언제쯤 나아질 지 모르겠다. 특히나 지금처럼 피드백을 빡세게 주는 리더와 일하다보면 멘탈이 약해질 때가 있다. 다 겪고 나면 나아질 것이라 믿고 있다.)

   다행히도 프로젝트 배치 4주차의 끝이 되니 조금은 적응된 느낌이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어 즐겁다.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구나 하는것이 느껴진다. 이 깍두기도 다다음주면 끝나겠지. 봉인이 해제되는 것이 무섭다. 이게 끝나면 야생으로 던져지는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그냥 에버랜드 사파리란 말인가. 일평생 학교를 벗어나질 않은 나한테는 지금도 충분히 야생이다.

   지금은 뜬금없이 캐나다에 출장을 와있다. 첫 출장을 이렇게 금방 오게 된 것이 신기하고 이런 기회에 생긴 것에 고맙다. 여긴 아직도 춥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원 분들과의 분위기는 더 따듯해진 기분이다. 프로젝트도 이전보다는 안정된 트랙을 타고 있다. 졸려 죽겠고 할 일도 많은데 지금 안쓰면 이 깍두기 기간 끝나기 전에 절대 못쓸 것 같다는 강한 기분에 글을 썼다. 낮에 내 과거 글을 두개 쯤 본 이유도 있다. 아 그런데 너무 비장하고 거만하게 썼다. 나중에 수정좀 해야겠다. 부끄럽다 ㅋㅋ글이 굉장히 중구난방인데 이런 시점에서 글까지 구조화할 순 없겠다는 생각에 아무렇게나 써봤다. 메세지도 있으면서 정갈한 글을 쓰는 건 참 어렵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1) 경영 전략 컨설턴트 일기: 트레이닝을 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