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스마트폰 보다 지루함이 필요하다.
커피 전문점 키오스크. 내 앞에 두 명이 있다. 지금 주문하고 있는 사람은 연배가 있으신 분이다. 키오스크가 익숙지 않으신지 매 주문절차마다 뜨는 알림을 꼼꼼히 읽어보신다. 주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뒷사람의 한숨도 길어진다. 결제 단계에서 주문 내역을 찬찬히 보신다. 주문을 잘못하신 모양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때 뒤에서 점원이 '아직 주문 못하신 분,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만 보고 있다. 점원이 아무리 불러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양쪽을 번갈아 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점원이 너라도 와서 주문하라는 눈빛을 보낸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보다 빨리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잠깐의 지루함을 즐긴 내가 기회를 잡았다.
스마트폰의 출현 이후 점점 더 사람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언제라도 놓을 수 있는 도파민 주사가 손에 있는데 굳이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느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지루함은 나태함과 친한 친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지루함을 느끼면 죄책감을 느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지루함은 떨쳐 내야 할 불쾌한 감정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는 지루함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 연구자들은 지루함이 생산성을 높이고 지적 호기심과 인지력도 증가시킨다고 말한다. 실제 연구에서 지루한 작업을 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작업을 한 그룹 중 엉뚱한 질문에 창의적인 대답을 한 그룹은 지루한 작업을 한 그룹이었다. 지루함이 우리가 매번 똑같이 수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루함은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 Network)라는 뇌 영역의 활성화를 증가시킨다. 이 네트워크는 상상력, 공감 능력, 창의적 사고, 문제해결력과 관련이 깊다. 지루한 시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촉발하고 문제해결에 필요한 창의성을 향상한다. 또한 적절한 지루함은 뇌에 휴식을 줌으로써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휴식을 취할 때 스마트폰을 놓고 그냥 한번 멍 때려보자. 스마트폰 볼 시간에 멍 때리며 산책/샤워/그냥 허공 응시하기를 해보자. 외부 자극이 없을 때 정신과 마음은 새로운 곳으로 마음껏 펼쳐질 수 있다. 매일 숨 가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건 스마트 폰이 주는 도파민 쾌락이 아니라 비어있는 시간이다.
사피엔스로 유명한 인문학자 유발 하라리는 말했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 될 것이다."라고.
저 말은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 "지루함을 통해 숨겨진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가장 큰 강점이 될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