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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are of Awareness Jul 10. 2024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닐 때도 있다.

중고 거래 판매자가 입금받고 연락 안 될 때 후달림

최근 둘째 낳고 18개월 만에 다시 기타를 잡았다. 처음 치는 듯 어색했지만, 칠 줄 아는 곡도 없었지만 재밌었다. 다시금 열정에 불이 붙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저렴이 기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장비빨이 서야 연습도 재밌고 할 맛도 난다. 열정은 반드시 지름을 동반한다. 


내가 원하는 스펙임에도 저렴한 국산 브랜드 기타를 기분 좋게 업어왔다. 늦은 밤 김포에서 일산까지 차로 달려가 업어온 녀석이다. 잠깐 쳐본 느낌은 이게 이 가격이라고? 였다. 고등학생일 적에 낙원상가에서 긴 머리에 문신한 형이 이거 엄청 좋은 건데 사장님 몰래 너한테만 싸게 판다고 해서 사온 기타보다 훨씬 좋았다. 하긴 그때보다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더 변했을 시간이 지났으니 기술도 그만큼 좋아졌겠지 싶다. 지금 그 형은 60줄 다 되셨을 텐데 그때 고삐리 눈탱이 친 돈으로 편한 여생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했다. 


이제 기타를 질렀으니 주변 용품을 둘러본다. 줄도 예전에 사놓은 게 있고, 예전 기타 가방을 뒤져보니 렌치도 몇 세트나 나온다. 기타 멜빵도 두 개나 있고 평생에 한통도 다 못 쓸 레몬오일은 두 통이나 있다. 아차. 그런데 정작 기타를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피크가 없다! 피크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에 삼각뿔처럼 생긴 1.14mm의 플라스틱 쪼가리다. 일렉트릭 기타는 보통 이 피크라는 플라스틱으로 치는 게 일반적이다. 피크도 연주자의 스타일만큼이나 모양도 두께도 다양하다. 나도 여러 피크를 써보고 나에게 맞는 종류로 정착했다. 기타 가방을 뒤져보니 낡디 낡고 닳아 빠진 피크 두 개가 까랑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마지막 지름은 피크로 결정했다.


기타를 치기 위한 마지막 지름으로 피크를 사려고 중고장터를 들락거렸지만 피크를 파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내가 원하는 매물은 나오자마자 빛의 속도로 팔렸다. 포기하고 온라인 악기점에서 사야겠다 하고 장바구니에 메인으로 쓰는 피크 외에 이 피크, 저 피크를 줍줍 하는데 스마트폰에 알림이 뜬다. 내가 설정해 놓은 매물 등록 알림이다. 빛의 속도로 접속해 보니 어떤 감사하신 분이 내가 쓰는 피크를 72개 들이 한 팩을, 그것도 뜯지도 않은 봉다리 째로 올리신 것이었다. 냅다 문자를 드리고 계좌를 받아 입금하고 배송받을 주소를 알려 드리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입금 전 ‘더 치트’ 사이트에서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조회해 등록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판매자는 입금받은 날 저녁에 바로 편의점 택배로 붙여준다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택배 붙이시고 송장번호도 알려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다음 날, 상쾌한 기분으로 폰을 봤는데 송장번호가 없다. 그럴 수 있지. 택배거래 한두 번 해보나, 허헛. 하며 애써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숨겼다. 나의 기상시간은 5시 30분이라 그때는 문자를 보내기도 너무 이른 시간이다. 하여 9시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다 8시 31분에 택배를 붙였는지 확인 문자를 보냈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다. 분명 어제 거래하려고 문자 했을 때는 칼답이었다. 그런데 입금이 되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답이 없다. 네고도 안 해주고 택배도 착불로 받기로 했는데 괘씸함을 참을 수 없다. 오늘까지 내야 할 보고자료를 닫고 구글에 소액사기범 잡는 법을 검색한다. 소액사기는 답이 없단다. 경찰서에서는 콧방귀도 안 뀐단다. 억 단위 사기가 판치는 마당에 5만 원은 너무 작고 귀여운 액수다. 


결국 전화를 건다. 신호가 간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신호음을 세기 시작했다. 20번째 신호 끝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젠장. 나의 생돈 5만 원이 공중에 분해되는 순간이었다. 치킨 두 마리 겨우 사 먹을 그 돈이 아쉬워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사지 멀쩡하면 나가서 땀 흘려 돈을 벌지. 나이도 어린놈이 못된 것만 배워서…쯧쯧쯧.(하지만 나는 그의 나이를 모른다. 왜 어린놈이라고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중에 나도 의아했다.) 그냥 거지에게 적선한 셈 치자라고 생각을 바꿔봤지만 천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차라리 기부를 하면 기분이라도 좋고 연말에 세액공제도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 중고거래는 직거래만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어차피 이리된 거 불쌍한 인생 하루 먹을거리 구제해 줬다는 생각으로 다 잊고 다시 보고서를 켰다. 눈앞에 펼쳐진 엑셀 위 매출에 5만 원 단위가 빼곡했다. 하마터면 품목란에 ‘피크’라고 적을 뻔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이자 싶어 부서 간 협의할 일을 찾아 돌아다니며 일을 했더니 그나마 마음이 가라앉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출근 이후 처음 나간 밖은 후덥지근했다. 그 열기에 오전의 해프닝은 잊혔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브런치를 하기 위해 폰을 켰는데 문자가 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열어본 문자는 판매자였다. 어제 야근을 많이 해서 못 보내 미안하다. 오늘 꼭 보내겠다는 문자였다. 세상은 다시 살만한 곳이 되었다. 음식이 좀 늦게 나와도 괜찮았다. 밥을 곱게 담은 수저가 이쁜 피크처럼 보였다. 나도 이제 이번주에는 다 닳아 빠진 피크 대신 새 피크로 낭창낭창하게 기타를 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반나절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적은 금액으로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았다. 인간이란, 아니 나란 얼마나 간사하고 나약한 인간인가. 물론 상황이 그렇긴 했지만 진득하게 하루 정도는 기다려 볼 수도 있었을 터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일방적으로 간절히 기다리는 이를 위로하기 위해 생긴 말이 아닐까. 짤막한 한 줄이라도 소식을 간절히 바랄 만큼 생각하고 기다리는 이에게 사실 무소식은 고문에 다름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희소식이라고 강요한 무소식이었을까. 나의 소식을 듣고 싶지만 차마 먼저 연락하기에는 바쁜데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여러 번 망설이게 하진 않았을까. 나의 부모에게 나는 무소식이었던 존재가 아닐까. 한 집에 같이 사는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도 난 무소식이지는 않았을까. 몸은 함께 있지만 나는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이들이 바라는 사랑과 관심을 나의 개인적인 열정에 쏟아붓고 남는 체력만 주지는 않았을까. 


내가 기다리는 소식도 있지만 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바라는 것만 바라보았을 뿐, 나를 바라보는 이들은 외면한 건 아닐까. 소중한 것을 옆에 두고도 소중한 것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끝은 결국 처음 떠나왔던 곳이다. 이 우화가 동심을 지키기 위한 동화가 아니라 삶의 진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들을 모른 채 했다. 


반나절 동안 5만 원으로 벌인 난리 치고는 얻은 게 크다. 브런치에 쓸 글감을 얻었고 늘 나를 기다려주는 가족을 발견했다. 오늘은 기타 줄을 뜯기 전에 치킨 한 마리 사들고 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닭다리를 뜯어줘야겠다. 어서 퇴근할 때 치킨 사간다는 희소식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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