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힘

Self-Question만 잘해도 삶이 달라진다.

by Aware of Awareness

2014년 첫 아이가 생기면서 인생 처음으로 차를 샀다. 10년 넘은 500만 원짜리 아반떼였다. 그 차를 7년 가까이 몰면서 많은 추억이 있지만 속도 어지간히 썩혔던 터라 마냥 이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차에 안정감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종이차를 타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동승하는 사람마다 차가 좀 불안하다며 차 바꾸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안전상의 문제로 7년 만에 새 차를 사기로 했다. 남자치고는 차에 큰 관심이 없긴 한데 그래도 새 차를 산다고 하니 기분이 설렜다. 무슨 차를 살지 그날부터 폭풍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종류의 차로 후보가 좁혀졌다. 결정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길가에 온통 내가 사려고 점찍어 놓은 차들만 눈에 보였다. 이 차들이 이렇게 많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보였다. 전에는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차를 사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차가 늘어난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 그 차들이 거리에 많이 보였을까.


뇌에 망상활성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 RAS)라는 부분이 있다. 쉽게 말해 뇌에 입력되는 온갖 종류의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각이 망상활성계를 통과한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에 떠오르는 것은 입력되는 자극수에 비해 극히 적다. 망상활성계가 불필요한 정보는 거르고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만 의식으로 올려 보내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또렷하게 들리는 이유다. 소음은 무의미한 자극으로 처리하여 무시하고 나에게 중요한 정보인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의식에 띄우는 것이다.


이렇듯 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가 보이면 의식으로 띄운다.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는 내가 평소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가 결정한다. 오래 생각하고 마음에 깊이 담아둘수록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같은 거리를 걸어가도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온통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이고 돈벌이를 궁리하는 사람에게는 아이템과 사업거리를 발굴하는 시장이 된다. 나처럼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아수라장이다. 차에 관심 있는 사람은 차만 보이고 명품에 관심 있는 사람은 명품만 보인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사물이나 소리, 냄새 등 내 의식에 잘 포착되는 감각이 있다면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질문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뇌는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Self-Question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망상활성계에 필터를 씌운다. 그럼 그에 관련된 정보만 들어온다. 뇌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외부의 모든 감각을 필터링하고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의식으로 가져온다. 질문을 부정적으로 하거나 누군가나 무언가를 탓하기 위해 한다면 뇌는 핑곗거리나 안 되는 이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만 의식에 올린다. 인생이 잘 안 풀리고 불만스럽고 억울하다면 무의식적으로 하는 Self-Question을 잘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내가 부정적인 질문을 계속하면 뇌는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이겠는가. 자기비하와 무력감을 합리화하는 답이 도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 일리 없다. 내가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지 질문을 할 때마다 노트에 적어봤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세상은 나만 미워할까. 남들은 다 편하게 성공하고 잘 사는데 나는 왜 맨날 힘들까.’ 자기비하와 혐오적인 질문뿐이었다. 이 질문에 망상활성계가 필터링하여 내놓은 답은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냥 관두자.’였다. 자기비하적인 질문에는 패배주의적인 답변 말고는 나올 수 있는 답이 없다.


인생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더 나은 질문을 해야 한다. 나도 인생이 불안하고 답답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30년간 찾아 헤맸다. 나의 본질, 진심이 무엇인지 찾고 또 찾았다. 수 없는 방황 끝에 찾은 현재의 결론은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늘 변하는 존재이기에 고정된 자아상은 없다.’이다. 자아는 어느 깊숙한 미지의 세계에 봉인되어 있는 보물이 아니다. 내가 부단히 하루하루 연마하여 만들어 나가야 하는 까다롭고 거친 원석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 오랜 시간 던져왔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진정으로 나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데 찾지 못해 이러고 있을 뿐이라는, 그것만 찾으면 난 특별해질 거라는 유아기적 환상에 사로잡힌 자기합리화였다. 별 것도 없는 놈이 노력도 안 한다는 비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창조해 낸 자기기만이었다. 답을 찾는답시고 한 일은 고개를 숙이고 하늘을 찾는 꼴에 다름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 오랜 시간 간직했던 질문을 버렸다. 변화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질문을 쓰고 지우길 반복했다. 나를 속이는 질문이 아니라 나를 깎고 자르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이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나의 새로운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다니자 나의 망상활성계는 그에 맞춰 필터를 갈아 끼웠다. 망상활성계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 묵묵히 역할에 충실한 사람, 남 모르는 작은 선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소소하지만 감사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각이 바뀌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변화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진심으로 나를 위한 질문은 나를 변화시킨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정해진 보석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헛수고를 했다. 있지 않은 것을 찾으려 했으니 찾을 수 없었다. 자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역설적으로 내가 누군지를 찾는 것이 허무맹랑한 일임을 깨닫자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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