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물면 더욱 단단해진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틈이다.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트라우마란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괴롭히는 상태다. 이별, 죽음, 폭력 등 강렬한 충격으로 생길 수도 있고 사소한 일로도 생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집단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는 일상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우리 삶을 포위하고 있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상처는 치유될지언정 흉터는 남는다. 트라우마는 궁극적으로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은 트라우마와 함께 사는 법을 알려준다.
트라우마를 품고 산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 많다. 마치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악한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 수 있냐고 묻는다. 그만큼 그 고통은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그 사건 자체가 아니다. 사건이 내 안에 남긴 상처다. 그 상처를 보살펴줘서 치유하자는 뜻이다. 내 안에서 아픔을 일으키는 요인은 내가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누군가는 쉽게 벗어나는 듯 보인다. 다른 이는 죽을 만큼 힘들어한다. 사건이 절대적으로 똑같은 강도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큼의 충격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그 강도조차 내가 설정할 수 없다. 나의 기질,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 가치관, 건강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내가 내 기분과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듯이 상처도 그러하다. 안 받고 싶다고 안
받을 수 있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상처는 나더라도 그 상처를 돌보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다.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은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스스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외부의 지원만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영영 치유될 수 없다. 외부의 도움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가장 먼저 자신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다면 그 고통의 원인을 수용해야 한다. 이 끔찍한 사건을 수용하기는 또 다른 고통이다. 그래서 치유과정은 성급히 진행해서는 안된다. 환자에게 맞는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 아주 길고 더딘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첫 번째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이후 단계는 소용이 없다. 이 첫 단계를 잘 받아들인다면 그 자체로 많은 치유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첫 단계를 잘 넘기고 나면 그다음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주변사람과 주변환경을 안전하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로 채워라. 굳이 비싼 환경이나 전문 상담사일 필요는 없다. 친구, 가족 누구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면 된다. 이 단계까지 도달하면 상처는 상당히 치유가 되어 그것을 바라봐도 더 이상 크게 아프지 않을 것이다. 보통 치유의 단계라고 하면 여기까지 생각하지만 저자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치유를 넘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처럼 말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 귀에서 진물이 날 지경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삶에 적용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그냥 성공한 사람이 있어 보이려고 만들어낸 말 같다. 하지만 에디스 시로는 그 말이 진리임을 깨닫고 실천했다. 본인이 강력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그 불행을 딛고 치유를 넘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기법을 창안해 냈다. 트라우마에만 빠져 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취다. 삶을 무너뜨리는 잔인한 사건을 발아래 두고 그 위로 우뚝 섰다. 상처는 아물면 더 단단해진다.
물론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하기엔 어려움과 제약이 많다. 더구나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은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나의 치유는 그 누구보다 내가 적극적이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 트라우마 치유는 치료를 넘어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라는 점. 세상은 내가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이 책은 나를 사랑하는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시한다.
세상에서 질타받는 피해자만큼 억울한 사람이 있을까. 누구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려 할 것이다. 내가 트라우마의 피해자인 나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와 나의 관계를 재정립할 시기이다. 삶은 언제나 힘들고 고달프다. 인생은 고통이다. 이런 사실을 마주하고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더 잘 알고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더 이상 두렵고 불안하지 않은, 살아봄직한 곳이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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